사람은 내 그릇의 크기만큼 사람을 본다!(2)

by ILMer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 축구 해설위원 이영표 -


CEO와 임원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들이야 말로 능력이 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능력이 되지 않은 사람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맡았을 때, 특히 그 자리가 CEO라면 회사가 안고 가야 할 대가는 혹독하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조직은 현재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개개인의 타고난 자질과 자기만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조직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앞에 나서서 이끄는 리더보다는 조력자 또는 참모로서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듯이 자신의 자질과 역량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CEO와 임원의 자리까지 오르고 싶어 한다.

마치 홈쇼핑이나 광고 속 모델들이 입은 옷이 자신에게도 똑같이 어울릴 것이라는 착각과도 같다.

그리고 그때는 자신의 역량이나 자질에 대한 고려, 즉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느 역할에 적합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온갖 수단과 방법, 인맥을 동원해서 정상의 자리까지 가면 자신도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훌륭한 리더는 자신의 생각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동안 내가 모셨던 직장상사들을 감히 평가하는 것이 건방지게 보일 수 있지만, 회사생활 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직장상사들 중에 내가 생각하는 기준의 훌륭한 리더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분들 중에 대다수는 오히려 훌륭한 참모가 더욱 어울렸지만 리더가 된 사람들도 많았고, 누군가는 그 조차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온갖 인맥을 동원해 그 자리에 앉은 사람도 있었다.


내가 봤던 진정한 리더는 회사의 모든 일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해당 사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의견을 묻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최종 판단은 CEO가 했다.

또 다른 CEO 역시 첫 번째로 한 일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그들로부터 사안에 대한 내용을 일일이 보고 받았고, 자신이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회의는 지속되었다.

끝으로, CEO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참석자들의 의견을 들은 후, 최종 판단을 했다.


두 명의 CEO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는 전자였다.

최종 판단을 한 것은 당연히 CEO로서 동일하다. 두 경우 모두 CEO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민주적 절차대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자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먼저 듣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을 했고, 후자는 자신의 생각을 먼저 밝히고 참석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어느 조직에서든 내 인사권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거스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후자의 경우 과연 CEO가 낸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낼 참석자가 있었을까?


회사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넘치던 시절 나 역시 CEO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대 의견을 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왜? 아무도 이 말도 안 되는 의사결정을 말리지 않지?"라고 생각했었다. CEO와의 미팅이 끝나고, 회사 앞 흡연장소에서 만난 모 부서장이 내게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C부장 진정해, 이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거 누구나 알잖아? 알면서도 사장님이 강하게 말씀하시니 토를 못 다는 거지. 혹시 C부장, 로또 된 거 아니지?”.

로또?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소리인가 의아했지만, 이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CEO가 꺼낸 의견에 모두가 반대를 하고 싶지만, 그것을 거스를 수 없는 게 월급쟁이들의 한계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었다.


모 그룹의 회장과 사장단의 오찬 자리에서 있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들과 중국집에서 오찬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평소 검소하기로 소문난 분이었기에 사장들 중 아무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식사 자리에 참석을 했다.

“자, 오늘 오랜만에 이렇게 모였으니 각자 좋아하는 음식들 편히 시켜요. 나는 짜장면"...

그렇다! 그날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사장단의 메뉴는 짜장면과 짬뽕으로 수렴되었다. 그나마 짬뽕을 시킨 사장들은 나름 소신과 강단이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뭐야? 다들 짬뽕하고 짜장면을 시키네. 이 집이 짜장면하고 짬뽕 잘하는 건 어떻게 알았지? 원래 중국집은 기본 메뉴를 제일 잘해야 하는 거야! 하하하”. 회장님의 말씀에 참석자 모두 함박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음식 하나 주문하는 것도 내 인사권자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조직에서의 불문율인데, 하물며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어 CEO의 의견을 거스르는 것은 단두대 위에 목을 내놓는 것처럼 자살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 직속상사의 의견을 거스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승진과 함께 회사에서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짐에도 이와는 반대로 상사의 눈치를 더 보게 되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자리는 역량이 되는 사람에 의해서만 빛이 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