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역사를 좋아해서 도서관에 가서 역사 관련 책들을 찾아보곤 했다.
왜? 내가 남보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에서 비롯되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직장을 다니셨던 관계로 내가 학교를 다니기 전 대부분의 시간은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7살 무렵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홀로 집을 지켜야 했다.
당시 나 보다 손위의 누나 둘은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누나들이 하교를 하기까지 오전 내내 혼자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읽을 책도 없고, 그림 그리기에도 지쳐 있을 무렵 장롱 위에 꽂혀 있던 책들이 눈에 띄었다.
오랜 기억 속에 출판사가 어디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과 김유신 장군 같은 우리나라의 위인들과 아인슈타인, 슈바이저 등 다른 나라 위인들의 일대기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까지 포함하는 책들의 세트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해당 책들의 묶음이 어떠한 주제로 이루어졌는지 사실 조금은 모호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도대체 세계의 위인들이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아마도 유명 출판사의 책들을 짜깁기 한 복제판 책들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매일 친구들과 동네 주위를 뛰어다니며 노는 것도 지겨웠고, 오전 10시가 넘어가면 TV도 화면조정으로 넘어가던 시절이라 겨우 7살 아이가 읽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책들을 반강제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이 되었다.
변변한 삽화 하나 삽입되어 있지 않고, 텍스트의 나열만 끊임없이 이어진 책들을 내가 어떻게 읽어 내려갔는지 신기할 정도다. 가장 흥미를 느낀 책은 역시 '호메로스 이야기'였다.
책을 읽으며 나는 '트로이 전쟁'의 장면들을 하나씩 상상해 봤다. 그리고, 2부에서 이어지는 오디세우스의 10년에 걸친 귀향 스토리와 이타카섬에 도착하여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일거에 타진하는 내용들을 읽을 때는 어린 손에도 땀이 맺힐 정도로 많이 긴장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를 발굴하게 된 계기도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일리아드'의 트로이 목마 장면을 나타낸 삽화 한 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호메로스 이야기'를 읽은 후부터 나는 역사와 관련된 것들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에서 도서관을 중학생들에게도 오픈한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뻐했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다양한 역사 관련 서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래서 어려서부터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나 보다."
만약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위인전이나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아닌 영어책과 수학책이 꽂혀 있었다면 어땠을까?(아마 영어, 수학은 물론 역사도 싫어했을지도)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인지 중학생이 되어 배우기 시작한 국사와 세계사 과목이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과목들이 되었다. 또한 한문 수업 역시 좋아했다. 한문이라는 어려운 과목 자체보다는 수업 중간에 나오는 고사성어들이 대부분 중국역사의 한 장면에서 그 근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고사성어가 생기게 된 배경과 역사를 함께 알아가는 것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수많은 나라들의 역사책을 읽으며 인간의 역사 속에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한 공식과도 같았다.
단명하는 왕조가 아닌 어느 정도 존속기간을 가지는 나라에서는 어김없이 3~4단계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1단계로 나라를 건설하는 뛰어난 창시자가 존재한다는 것. 새로운 왕조가 생기려면 당연히 왕조의 창시자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은 뒤따르는 후계자들과는 다른 특징을 나타낸다.
인간의 모든 역사, 특히 고대에는 정복전쟁이 군주의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시험대였기에 한 국가의 창시자들은 뛰어난 무인(武人)이거나 전략, 전술에 능숙한 지략가(智略家)인 경우가 많다. 물론 자신이 뛰어난 무인 이거나 지략가가 아니더라도 용병술에 능한 사람이 그들을 중용하여 나라를 창건하거나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항상 창시자로부터 2, 3대쯤 자신의 선조를 뛰어넘는 군주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최대로 확장하거나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여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이끌기도 하고, 예술과 문화를 장려하여 엄청난 건축물이나 예술품들을 남기는 등 나라를 중흥하게 하는 성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는 누구나 예상하듯이 폭군 또는 무능한 군주가 등장한다. 이들은 사실 자신의 왕조에서 차지하는 위치보다 그다음 왕조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그들이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수밖에 없는 길을 터주거나 적어도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왕조의 창시자들은 명분을 얻고,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업들에게도 왕조의 단계와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훌륭한 CEO들은 상당히 도전적이고 모험적이거나 진취적인 성향으로 기업을 창건하거나 중흥하게 만든다. 비록 자신이 온전히 그렇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재 등용을 통해 채울 줄 안다.
그렇다면 훌륭한 CEO 들이나 군주들이 오롯이 뛰어난 직원이나 신하들 때문에 성공적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자신의 부족함을 볼 수 있는 현명함과 기꺼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이를 통해 그것을 채울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의 됨됨이나 능력, 포용력 등을 판단하며 “그 사람은 그릇이 커!”라는 말을 쓰곤 한다.
그렇다! 훌륭한 군주나 기업의 뛰어난 CEO들은 남들보다 큰 그릇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그릇에는 항상 인재를 담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마지막 군주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자.
기업에도 항상 그런 CEO나 경영진들이 존재한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그릇은 너무 작고,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포용할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뛰어난 인재는 곧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그릇에 담긴 사람들 중에서 쓴소리나 바른 소리를 해줄 사람은 거의 없다.
항상 CEO만을 바라보고, 그의 생각을 추종하는 것이 전부이다. 어쩌면 CEO가 원하는 것이 딱 그 정도의 역할이었을 테니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을 역사 속의 간신들과 같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나 나라의 영속보다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부귀영화나 승진과 안위가 더욱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 기업을 바라볼 때 그 회사의 CEO와 주변의 인물들을 보자!
모든 것이 그 회사의 CEO에 의해 결정되고, 최고 경영진의 눈치만 살피는 조직이라면 과감히 그 회사와 멀어져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왕조의 마지막 군주와 신하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나라의 운명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큰 그릇을 가지도록 노력해 보자!
적어도 가지고 있는 그릇이라도 커야 뭐 라도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