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Destroyer' 제작기(5)
본체에 사용된 킷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실제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킷들을 찾는 과정도 어렵지만, 킷배싱(Kitbashing)에 사용된 킷들의 상당수가 이제는 판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도 매우 다양했다. 이미 오래전에 회사가 망했거나 회사가 존속해도 생산을 중단하거나 새롭게 Retool 되어 이전과 다른 파츠(Parts)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의 좌, 우 모두 일본의 Tamiya社에서 발매한 플라스틱 모델이지만, 좌측은 70년대 모델로 스타워즈 스튜디오모델 제작에 사용된 것과 동일하고, 우측은 2000년대 이후에 재발매되었으나 몇몇 파츠들이 추가되거나 업그레이드 되어 오리지널과 차이가 있다.
그래서, 킷배싱에 사용된 donor kit을 알아내도 우선 해당 킷들이 70년대 출시된 구성과 동일한 몰드로부터 제작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다행히도 수십 년 동안 동일한 킷의 구성을 유지하고 있다거나 내가 원하는 파츠가 현재의 모델에도 포함되어 있다면 이건 정말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행운이었다.
수년간 내 출퇴근의 거의 모든 시간은 미국의 '이베이'와 일본의 '야후옥션' 사이트에서 빈티지 킷들을 찾는데 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하차할 지하철 역을 놓친 경우도 여러 번...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이베이'에서도 상당히 보기가 힘든 레어 중에 레어급인 킷이었다. 제조사는 이미 70년대 후반에 망했고, 제작 개수도 많지가 않았던지 수개월 동안 '이베이'에서 딱 한번 목격이 되었다. 첫 번째 킷을 잠시 한눈을 판사이에 놓치고, 무려 10개월을 기다린 끝에 성공적으로 입찰을 해서 구할 수 있었다. 무슨 골동품을 경매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나와 bidding 경쟁이 붙은 누군가가 있어서 입찰 마감까지 손에 땀을 쥐었던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이제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 형태를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본체에 donor kits을 찾아서 하나씩 디테일들이 채워져 가는 과정은 커다란 퍼즐을 맞춰 가는 것처럼 내게는 너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한 번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깬 와이프가 내가 옆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참을 찾은 적이 있다.
베란다를 확장한 내 작업 공간에서 보조 조명을 켜고 제작 중인 'Star Destroyer'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아연실색을 했다고 한다. (남편이 새벽 4시에 잠자다 말고 일어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아마 불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첫 번째 사고는 2008년 8월 내 부주의함에서 발생했다.
엔진 부분을 겨우 완성하고, 실제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라이트 업' 효과를 내기 위해 전구를 설치했다.
면밀히 엔진 부분을 관찰한 나는 '라이트 업'을 위해 백열전구가 사용되었다고 확신했다. '스타워즈'가 제작 중이던 70년대 중반에는 아직 LED전구가 상용화(?)되지는 않았기에 백열전구를 설치하고 전원을 연결했다. 그렇게 엔진에 불이 들어왔고 '라이트 업'이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기념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이 사고가 발생했다. 정말 몇 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고, 엔진 부품들이 백열전구의 열에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마터면 화재가 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서둘러 전원을 차단했지만, 거의 완성을 눈앞에 뒀던 후면의 엔진 부분은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ILM'모델러들 역시 동일한 발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엔진 부분을 알루미늄 파우더를 섞어 캐스팅(Casting) 했다고 한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녹아내린 부품들을 모두 제거하고, 복구가 어려운 부품들은 다시 제작을 했다.
또한 나는 'ILM'과 동일하게 알루미늄 파우더를 구해서 캐스팅을 할 수가 없었기에 최대한 백열전구와 비슷한 형태의 LED 전구를 사용하기로 하고, '구글'과 '이베이'를 서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의 모델에는 백열전구와 유사한 모습의 LED Key chain이 사용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사고를 겨우 수습하고 다시 재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즈음, 두 번째 예기치 않은 사고가 있었다.
2009년 3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잠시 TV를 보고 있던 나는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아들 녀석이 거실 바닥에 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전 소파 위에 올라가 장난을 치는 모습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나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다.
푹신한 소파에서 미끄러져 거실 마룻바닥에 넘어진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뭔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불안함이 엄습하던 순간 나는 앞 베란다 쪽 상황에 탄성이 나왔다. "아뿔싸!"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아파트 환경에서 이런 대형 모형을 만드는 취미를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와이프의 배려로 아파트 앞 베란다 공간을 독차지할 수 있었고, 거기서 부품들을 자르고, 붙이는 모든 과정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거실과 내 작업공간은 거의 한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내 눈치를 보며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큰 아이와 이 광경을 보며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둘째 아이, 그리고 짧은 찰나의 순간에도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했을 와이프...
그날 우리 집 거실의 모습이 16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정지화면처럼 생생하다...
✅ Tips
캐스팅(Casting) : 원래는 거푸집(주형틀)을 만들고 거기에 금속을 녹여서 물건을 제조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로 그 역사가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기술이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동검이나 청동거울 등이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주형틀의 세밀함 정도에 따라 동일하거나 유사한 수준의 퀄리티를 기대할 수 있고, 더욱이 주형틀이 망가지지 않는 한 다량의 복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모형 작업에서는 복제라는 의미와 혼용되며, 주로 실리콘 수지를 활용한 '실리콘 복제'가 사용된다.
'실리콘 복제'는 원본 모델(마스터 모델)에 실리콘 수지를 주입하고 경화하여 주형틀을 제작하는 방식인데, 실리콘은 고무와 비슷한 재질로, 유연성과 내구성이 뛰어나며, 섬세한 디테일과 복잡한 형상도 재현할 수 있어 거의 원본 모델과 똑같은 정밀한 복제가 가능하다.
이렇게 제작된 실리콘 주형틀에 레진(Resin)이라는 합성수지를 부어 경화시키면, 캐스팅 과정은 완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