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노벨상에 도전하는 것이 더 쉬울지도...

'Star Destroyer' 제작기(4)

by ILMer

이제 121.6cm로 크기를 가늠했으니 본격적으로 뼈대를 만들기 시작할 차례였다.

ILM의 모델러들과 동일하게 나무를 이용해 골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제작된 크기는 상상이상으로 어마어마했다.(아래 첫 번째 사진의 뼈대구조 앞에 크기 비교를 위해 놓인 자(Ruler)가 무려 50cm이다.)

나무로 완성한 골조 구조와 그 위에 아크릴로 상하판을 재단해서 추가한 모습, 2006년

나무 골조가 완성되고 테두리를 두른 후, 이어서 주말에는 '을지로 아크릴 상가'를 방문해 이미 준비해 둔 크기대로 상하판을 제작했다.

상하판을 부착하고, 'Star Destroyer'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사용된 'Tamiya 1/35 8rad 장갑차'의 부품을 본체에 부착해 봤다. 전체적으로 스튜디오 모델의 사진과 비교했을 때 다행히 크게 이질감이 없었다.


킷배싱(Kitbashing)에 사용된 프라모델 킷을 찾기 위한 노력...


어느 정도 본체가 틀을 갖추고 있었으나 'Star Destroyer'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본체 위에 디테일링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문제는 1975~76년 당시 ILM의 모델러들이 실제로 킷배싱을 위해 사용한 킷의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지만, 이내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상상력을 더해 미스터리(Mystery) 킷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스타워즈 제작 스토리'를 담은 책들에서 읽었던 'ILM 모델러들의 스튜디오 모델 제작과정' 이야기를 떠올렸다.

스튜디오 모델을 만들고 있는 ILM모델러들의 사진 속 선반을 확대한 이미지

"미니어처 우주선들을 제작하면서 손에 잡히는 프라모델 킷을 임의대로 디테일링에 사용했다면, 분명 저 사진 속 선반 위에 쌓여 있는 킷들이 킷배싱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나는 사진 속에 보이는 박스들의 이미지를 확대해서 'Tamiya'社의 경주용 자동차, 탱크, 전차, 군함 그리고 'Bandai'社의 탱크와 전차류, 'AMT'社의 자동차와 트럭 등 수많은 빈티지 킷들을 판별해 낼 수 있었다.


우선 그것들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킷의 내부를 알 수 있는 사진 정보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therpf'포럼 내에서 킷 세부 사진을 서로 공유하거나 '이베이' 등에서 판매를 위해 올린 사진들을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킷들 중 국내에서 아직 판매 중인 킷들은 직접 구매를 해서 일일이 'Star Destroyer'의 세부 사진들과 비교하며, 킷배싱 항목에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방식으로 목록을 정비해 나갔다.


다음으로, 나는 조금은 효율적인(?) 방법으로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없앴는데, 프라모델 킷 제조사들 중에서 1975~76년 이후에 만들어진 회사의 킷들은 처음부터 배제를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아카데미과학'은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라모델 킷들을 양산했기 때문에 '스타워즈' 제작 당시에는 '아카데미과학'의 킷들은 킷배싱에 사용될 수가 없었다.)

스튜디오 모델의 사진에서 찾아낸 실제 사용 킷과 목록
찾아낸 킷들을 바탕으로 제작 중인 'Star Destroyer'의 Bridge 파트, 2006년

내가 킷배싱(Kibashing)에 사용된 킷들을 찾는데 들인 시간은 2006년부터 7년 동안 'Star Destroyer'를 제작하기 위해 쏟은 시간의 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작을 일단락한 2013년까지 찾아낸 킷들은 모두 '130'개가 넘고, 해외포럼의 여러 친구들의 도움을 더해 스튜디오 모델에 사용된 킷들의 약 98% 가까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Star Destroyer'제작이 한창이던 2007년, 회사에서 조금은 이른 나이에 부서장으로 승진을 했다. 내 업무의 특성상 신입사원 시절부터 주말 근무는 물론, 평일 10시 이전 퇴근은 상상을 못 하던 때라 내게는 부서장이라는 중책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무모할 정도로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던 30대 시절이었기에 나는 두 가지 철칙을 정하고,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는 "절대로 회사 업무시간에 내 개인 취미와 관련한 것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몇 시에 퇴근을 하더라도 새벽 2시까지 'Star Destroyer'제작에 시간을 할애한다!"였다.

그리고, 가족들과 특별히 보내는 시간, 몸이 안 좋거나 회사 회식과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루틴을 몇 년간 지속했다.


만약, 이 노력을 다른데 쏟았다면...?


화장실에서,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심지어는 TV를 보는 시간마저도 내게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해외의 친구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을 수백 장 구해 쉴 새 없이 쳐다봤다. 혹시라도 놓치는 게 있을까 봐 위아래로 뒤집어도 보고, 좌우로 돌려서 보기도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목록을 업데이트 해가면서 조금씩 본체의 구조물도 만들어갔다.

아래 사진의 모습을 갖춘 것이 2008년 겨울이었으니까,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여했는데도 겨우(?) 이 정도밖에는 진척을 하지 못했다.(그래도 이제는 누가 봐도 "'Star Destroyer'를 만들고 있구나!"라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된 듯하다.)

계속해서 킷배싱을 통해 디테일을 추가하고 있는 모습, 2008년

이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니,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내 근황을 무척 궁금해했다.

"너, 요즘 뭐 하고 살길래, 도통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이번 모임에는 꼭 나와라!"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동안의 근황과 지금까지의 'Star Destroyer' 제작과정 이야기와 결과물들을 보여줬다. 흥분된 목소리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친구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던 내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야, 너 이 노력이면 노벨상에 도전해도 성공했겠다"...

(내가 만약 이 노력을 다른데 쏟았다면, 갑자기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편에서는 '완성을 눈앞에 두고 발생한 사고와 좌절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될 예정이다.


Tips

ILM 모델러들의 스튜디오 모델 제작과정 : 스타워즈는 처음부터 제작사의 큰 기대를 받은 작품은 아니었다. 더욱이 넉넉지 않은 예산, SFX영화의 특성상 수많은 영화 세트와 미니어처가 등장하는 관계로 제작 스케줄 역시 상당히 타이트했다. 이에 따라 ILM팀은 불과 몇 주 사이에 스튜디오 모델 우주선들의 디자인부터 제작까지를 모두 완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ILM이 위치했던 Van Nuys 부근에는 프라모델 도매샵이 위치해 있었는데, 그들은 도매샵으로부터 성형불량과 같은 정크 킷들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구입하고, 모델러들이 그 킷들의 부품을 미니어처의 본체에 임의대로 붙여가면서 디테일을 완성했다. 이런 제작과정을 통해 ILM팀은 모델 제작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모두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결과적으로는 '스타워즈'영화에 등장하는 멋진 우주선들을 탄생시켰지만, 동시에 실제 스튜디오 모델을 위해 어떤 킷들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그 정보를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스튜디오 모델들을 제작 중인 ILM 모델팀,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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