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사고, 좌절과 포기 그리고 재도전(2)

'Star Destroyer' 제작기(6)

by ILMer

3년 동안의 내 모든 노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거실너머 앞베란다 바닥으로 쓰러져 산산조각 나 있던 그 모습은 흡사 '스타워즈'의 전투장면에서 저항군의 'X-Wing'과 'Y-Wing' 편대의 공격에 허무하게 부서져 버린 'Star Destroyer'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래, 저 녀석을 저기 위험한 자리에 둔 내 잘못이다...!'

나는 아이에게 괜찮은지 묻고는 이내 밖으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순간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한 것도 있지만, 당황한 아이나 가족들에게 자리를 피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연달아 두대를 태웠지만, 정말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집으로 올라온 나는 "괜찮아! 잘됐어... 이 기회에 그만해야겠다...."라고 말을 하고는 다음날 출근 준비를 했다.


저녁을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앞베란다를 보니 어느새 부서진 모든 조각들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누가 치웠는지 묻기보다는 '그래, 차라리 눈에 안 띄는 게 더 이상 미련도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의도적으로 지난 3년여의 시간을 잊으려고 애썼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Star Destroyer'를 만들기 전 내 일상으로 돌아가려 노력했다.


내게 다시 용기를 준 고마운 사람...


어느 휴일 오후, TV를 보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왜? 휴일에 TV만 보고 있어? 작업 다시 안 해?".

나는 그날 이후 휴일에 더 이상 작업을 하지도 평일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녀석을 바라보는 일도 없어졌다.

"아니야! 별로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 없어! 다시 처음부터 할 자신도 없고...".

"요즘 너무 재미가 없어 보여! 'Star Destroyer'를 만들고 있을 때는 항상 늦게 퇴근을 해도 힘들어 보이지 않고, 의욕이 넘쳐 보였는데... 다시 해!" 그러고는 창고에서 무언가를 한 아름 들고 왔다.


"아니, 이건..."

녀석의 산산조각 난 모습을 보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그날, 아내가 수십 개의 조각을 하나하나 정성껏 모아 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아 놓은 녀석의 조각들을 보여주며 미소 짓던 그 모습에 하마터면 난 눈물이 날뻔했다.

그렇게 아내 덕분에 나는 어릴 적 꾸었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용기를 내서 작업을 시작한 나는, 완전히 부서져 복구가 불가능한 부분은 새로 제작하고, 어느 정도 땜질을 하거나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복원이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원본을 살리려 노력했다.

'지금은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상처가 보이지만, 잘 메우고 마무리 후 몸체에 색을 입히면 티가 크게 나지는 않을 것이다.'

수십 개로 산산조각 난 본체를 '퍼티'와 '순간접착제', '플라스틱판'으로 붙여 복원한 모습


“혹시, 측량하세요?” (드디어 색을 입혀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동안의 킷배싱(Kitbashing)으로 이제 어느 정도 많은 디테일이 채워졌고, 몸체의 주요한 부분들 역시 대부분 완성을 했기에 나는 드디어 프라이머(Primer) 도색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저기 부서진 부분을 복구하기 위해 메꾼 부분들이 자꾸 거슬린 것도 내가 도색을 서두르려는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도색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이 거대한 녀석을 어디서 도색을 할 것인가? 두 번째, 도색할 장소를 찾는다 해도 어떻게 옮길 것인가?

처음에는 평소 자주 방문하던 자동차 정비소가 쉬는 날 그곳을 빌려 도색을 할까? 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큰 몸체를 차에 싣는 것도 문제였고, 먼 거리를 이동하다가 자칫 겨우 복구한 녀석이 언제 파손될지 모르는 위험이 있었다.

며칠 동안 장소를 고민하다가 퇴근 무렵에 아파트 지상주차장의 한쪽이 눈에 띄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이라면 이동거리도 짧고, 도색을 하기에도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주차장의 끝쪽이라 사람도 많이 오가지 않고, 도색 분진이 날려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을 공간이었다.


몇 년 전 어느 정도 'Star Destroyer'가 형태를 갖춰 갈 무렵, 이 육중한 녀석을 받쳐줄 수 있는 스탠드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공중에 띄워 밑면 작업을 용이하게 하고 이후 작업공간의 확보는 물론, 완성 후 전시를 위해서도 적당한 스탠드가 꼭 필요했다. 다행히 'therpf.com'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형 PA스피커의 삼각 스탠드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어느새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성인 두 명이 겨우 옮길 수 있는 크기와 무게를 여전히 안정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다.)

PA스피커의 삼각 스탠드


나는 몸체를 스탠드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도색을 하기로 했다. 공중에 떠 있는 물체에 도색을 하면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주차장 여유공간의 바닥을 오염시키는 일이 적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색의 가장 큰 장애물인 장소가 정해지자마자 아파트 엘리베이터 좌우 폭을 측정했다. 불행히도 엘리베이터 좌우폭이 살짝 작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스탠드와 몸체를 분리해서 도색 공간으로 옮기고, 거기서 다시 결합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다음은 도색을 위한 시간이었는데, 사람들이 거의 오가지 않을 일요일 새벽 5~6시 사이로 결정을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는 도색공간의 밑면에 깔 신문을 일주일 동안 차곡차곡 모았다.


드디어 디데이, 내 덕분에(?) 새벽잠도 설치고 아내가 작업을 도왔다. 스탠드를 먼저 도색 공간에 가져다 놓고, 몸체를 두 사람이 세워서 겨우 엘리베이터에 실을 수 있었다. 워낙 거대한 녀석이라 도색을 위해 170ml 프라이머도 다섯 통이나 준비를 해두었다.

그렇게 도색을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마스크를 쓴 나는 드디어 내가 꿈에 그리던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사용했던 프라이머 '일본 군제社의 화이트 서페이서'


"혹시, 측량하세요? 아니 이 새벽에 깜깜해서 앞도 잘 안 보이는데...?"

때마침 아파트를 주변을 순찰하시던 경비아저씨가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 부부에게 건넨 말이었다. 삼각 스탠드 위에 본체를 결합하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측량기사가 장비를 설치하는 모습처럼 보였나 보다.


"아... 간단하게(?) 스프레이 도색을 할 게 있어서요. 혹시 사람들에게 피해 줄까 봐 지금하고 있어요. 얼른 마무리하고 주변도 저희가 잘 정리할게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바라보던 경비 아저씨는 "바닥에 안 묻게 조심해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이내 발걸음을 다시 옮기셨다.

예상했던 대로 5통에 가까운 프라이머를 다 썼는데도, 도색이 완벽하게 입혀지지는 않았다. 더욱이 다급하게 작업을 한 관계로 곳곳에 도색이 되지 않은 엉성한 상황이었지만, 완전히 동이 트고 사람들이 움직일 시간이어서 도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프라이머(Primer)로 밑색을 올린 'Star Destroyer'의 모습은 비록 다급하게 이루어진 작업이었지만, 나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직 패널라인과 세부적인 디테일 작업이 남아 있었지만, 단순하게 흰색으로 칠해진 그 모습만으로도 너무 만족스러웠다.

전체적으로 '프라이머'로 색을 올린 모습, 2009년 6월

더욱이 얼마 전 산산조각이 났던 녀석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파손 부분들이 복구되었고, 아래 '스타워즈' 순회전에 전시되고 있는 실제 스튜디오 모델의 사진과 비교해도 꽤 그럴싸해 보였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순회전에 전시된 스튜디오 모델

그렇게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1개월 정도가 흐른 2009년 7월의 여름, 마지막 사고는 지난 4년간의 모든 것을 멈춰야 할 정도로 너무나 강력했다...


Tips

프라이머(Primer) 도색 : 프라이머는 최종 도색을 위한 기초단계로 최종적으로 칠하고자 하는 페인트 색을 입히기 전에 사용하는 밑색 과정이다. 프라이머 작업을 통해 도색 대상의 표면과 페인트의 접착력을 높이고 페인트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작업으로 일반적으로 화이트나 그레이 계통의 색상이 주로 사용되며, 최종 도색 전에 균열이나 단차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사용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자칫 도색이 뭉치거나 흘러내릴 수 있기 때문에 얇게 여러 번 나누어 도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널라인(Panel Line) : 패널 라인 작업은 모형의 오목한 선과 틈새를 강조하여 시각적 디테일을 향상하는 데 사용되는 기법이다. 페인트나 잉크를 이러한 선에 도포하여 모델을 더욱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모델을 더욱 복잡하면서도 실제보다 더 많은 개별 부품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때문에 양산되는 프라모델에 기존의 패널라인에 더해 전용 패널 라이너(Linear)로 라인을 추가하기도 한다. 실제 영화에 사용된 실제 스튜디오 모델들 역시 대부분 패널라인 기법이 사용되었다.

'Star Destroyer'의 밑면에 패널라인 작업과 디테일링을 하고 있는 ILM모델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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