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평등'이 만든 불행(不幸)
미디어는 경쟁한다.
사람들의 시선과 클릭을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더 선정적인 정보를 쏟아낸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게 소비당하고 있다.
경제 기사에서는 재벌이나 고소득 계층의 소비를 ‘트렌드’처럼 포장하고, 연예인의 사생활은 항상 누군가의 ‘부러움 혹은 욕망’을 자극하게끔 편집된다. 뉴스는 사회의 불안과 갈등을 강조하고, 자극적인 사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
사실 우리 삶 주변에서도 늘 격차는 존재해 왔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 격차를 직접 확인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평균’을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평범한 사람들도 하루 수백 번씩 비현실적인 상위 0.1%의 삶을 보게 된다.
오늘날의 박탈감은 ‘빈부의 격차’가 만든 것이 아니다.
‘정보의 격차 없는 세상’이 만든 박탈감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자, 비교는 일상이 되었고 행복의 문턱은 점점 더 높아졌다.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만족과 행복은 수십, 수백억의 고가 아파트를 샀다는 연예인의 기사에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강남의 아파트 시세를 이야기하는 뉴스가 우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그리고 빚을 내 주식, 부동산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마치 세상에 뒤처지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을 채찍질하게 한다.
가끔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행복을 잃은 이유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들까지도 알고, 알게 된 것들을 잊을 수도 없고, 잊기에는 정보의 유입이 너무 빠르고 많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너무 많이 알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의 글 한 줄이 나의 하루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자유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 자유는 때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선택’을 요구하고, 너무 많은 ‘비교’를 떠안기며, 너무 많은 ‘의무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평범한 나의 하루를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과거가 더 좋은 시대였을까?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세상은 분명 더 편리해졌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지식과 정보는 삶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세계에는 작은 세계만의 장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비교할 대상이 적었기에 마음이 편했고, 삶의 기준이 가까운 이웃이었기에 현실적이었다.
주변과 비슷한 삶을 살며 자연스러운 동질감을 느꼈으며, 자신의 하루를 ‘충분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보다 가진 것이 적어도 삶의 기준은 분명히 우리 주변에 있었다.
우리는 이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상을 모른다는 것은 무지(無知)가 아니라, 불필요한 비교에서 벗어나는 지혜일 수 있다.
행복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데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때로는 정보와 나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는 데서 온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모르는 만큼 지켜진다’는 말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때로는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우리 자신을 잃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