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

by 눈빛이슬

난 규칙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꼭 지키도록 했다.

그런 육아 방식 때문인지, 아이들의 공부습관이 잘 잡혔고, 휴대전화 사용이나 행동 양식에서 큰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 생활이 남편 때문에 무너지기 일쑤였다.

엄마가 지켜보지 않을 때는, 그 규칙들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시그널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남편은 아이들이 해달라는 것은 조건 없이 제공했다.

놀아달라면 놀아주고, 사달라는 건 사다 주었다.

마치 연애시절 나에게 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아빠와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건강에 좋지 않은 간식을 자주 사다 주고, 휴대전화와 TV 사용시간도 통제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럴 때마다, 규칙을 무시한 남편을 타박하고, 아이들을 나무랐다.


나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남편도 함께 나와 협력하고 노력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실상은 내가 철없는 남편까지 육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난 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이렇게 규칙을 내세우니, 아빠라도 아이들이 숨을 쉴 틈을 주는 존재가 되어주는 게 아이들의 정서에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족 외출을 하는 날이면, 아이들은 아빠와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나보다 앞장서갈 때는 참 빨리도 걸어갔다.

뒤처져 혼자 따라가는 게 외롭게 느껴졌다.

남편은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앞장설 때도 비슷했다.

걷다가 뒤돌아보면, 남편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느릿느릿 따라오던 그들은 어딘가로 들어간 거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 언제나처럼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주위에 얘기하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챙겨주는 남편을 부러워했다.

맞다.

남편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나만의 시간을 즐기자.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난 자꾸만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꼈다.

남편에게 아이들 챙겨주는 것도 고맙지만,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이라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겠노라고 말은 했지만,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외출할 때마다 소외를 당하는 느낌은 내 잘못일까, 그의 잘못일까 고민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강압적인가?’

‘허용적인 아빠를 당연히 더 좋아하겠지’


내가 생각했던 부모의 역할에 대한 기준이 흔들렸다.

시댁에서도, 우리 가족 안에서도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는 게 남편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일반화라고 나 자신을 타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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