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 살던 집이 수압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종종 변기가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을 불렀다.
몇 번 나의 부탁을 들어주던 그가 하루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우 씨, 변기 물 다 튀었네. 나한테 변기 물 튀면 일 잘 안 되는데! 나한테 이런 일 시키지 마”
사업이 부정 탄다니!
이런 일을 남편에게 시킨 나 자신을 또 자책했다.
나는 그날 결심했다.
앞으로 화장실 청소와 변기 뚫는 건 내가 해야겠다고.
또한, 남편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처음에 분담했던 집안일은 하나씩 둘씩 내가 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남편이 하는 일이 잘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자발적으로 집안일을 하게 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남편이 강하게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게 되는 패턴이 결혼생활 내내 반복되었다.
아이 학원을 고를 때는 아이의 스타일에 맞춰 고심하고 또 고심하고, 학원 숙제하기 싫다고 투정 부릴 때는 어르고 달래는 것 역시 나였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 학원을 많이 보낼 수 없어서, 나 혼자 고군분투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시험결과를 보며 나의 노력이 보상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남편이 그동안의 내 노고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가 뭘 했는데?”
아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시험결과가 좋았던 것도 맞다.
하지만, 남편의 그 한마디는 내 마음을 또 한 번 차갑게 식게 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나에게 일말의 고마움은 느끼고 있는 건지 의문스러웠다.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지. 남편이 나에게 고마워할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또, 그의 생각에 나를 맞추며,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