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미성숙

by 눈빛이슬

남편의 자존심이 세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기가 막혀할 말을 잃었다.


“우리 부모님 집이 장인·장모님 집보다 비싸.”


어?

초등학생 대화처럼 유치하기 짝에 없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게다가, 누구 집이 비싼지 겨뤄서 얻는 게 뭘까.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단단히 미친 걸까.

더는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힘든 일주일을 마무리하며 조용히 와인 한잔을 하고 싶은 어느 금요일 저녁.

매일 가는 아이 학원 픽업이 가기 귀찮았다.

때마침 남편이 귀가했고, 남편에게 픽업을 부탁했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은 종종 픽업을 부탁하곤 했던 터였다.


‘지금 막 일하고 온 사람한테 픽업하러 가라고 해?! 넌 귀찮은 일은 전부 나 시키더라!’


그날따라 남편은 급발진했다.

와인잔을 꺼내고 있던 내 손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위해 지금 막 퇴근한 사람에게 픽업을 부탁했던 내 이기적인 모습을 되돌아봤다.


하지만, 남편만큼이나 나도 힘든 일주일을 보냈다.

수업이 많아졌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이 쌓여있었다.

오늘 딱 하루, 저녁 시간만이라도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게 그렇게 잘못된 거였나.

나도 화가 났다.

결국, 나만의 계획은 틀어졌고, 기분만 잔뜩 상했다.

근처 공원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숨 막혔다.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 돌아오자, 그는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밝게 웃으며 아이를 맞이하는 그의 얼굴을 보자니,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내 기분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순간, 남편이 미치광이처럼 느껴졌다.

그의 기분은 빈대떡 뒤집히듯 순식간에 바뀌었고, 난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남편이, 아이들에게 활짝 웃어 주는 모습을 보면, 좀 전에 그 남자가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난 이런 상황들을 남편이 나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신호라고 믿으려 애썼고, 꽁해있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남편을 성격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저런 긍정적인 마인드를 닮아야겠다고.


하지만, 그는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어른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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