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후아니타와의 싸움

by 조이 킴



나의 뮤즈 후아니타


KakaoTalk_20210114_041849568.jpg - 함께 등산을 간 후아니타와 나 -


얼마 전 친구 후아니타(Juanita)와 처음으로 대판 싸웠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대화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전환하여 말싸움으로 끝난 것이다. 나에게 늘 지지와 조언, 애정을 줄 뿐만 아니라, 나의 삶에 뮤즈 같은 후아니타와 싸우다니, 꽤 당황스러웠다.


후아니타는 자기 손으로 일구어 가는 삶에 대해,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걸어가는 삶에 대해 나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통로다.


그런 후아니타와 싸우게 된 것은 작년 7월 경에 그녀가 오픈한 카페 때문이었다. 그녀의 나이 육십 오 세. 나이도 나이이지만 그녀는 곧바로 목표 지점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기 보다는, 길가에 핀 작은 꽃들에 감탄하고 모래톱에 박힌 부서진 조개껍질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느린 삶을 사는 사람이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조직되는 새로운 일상은 우연한 마주침과 자연스러움을 중요시하는 그녀의 삶의 흐름과는 매우 다른 기운이기에, 어려웠을 것은 분명하다. 거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밤낮으로 카페에 매달리면서도 초반의 자신감과 열정을 잃어가는 후아니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나는, 후아니타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카페 운영에 있어 이러 저러한 부분을 개선하면 좋겠다고 조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서로의 감정이 상하고 마는 불상사가 있었던 것이다.


KakaoTalk_20210209_094500015.jpg 후아니타가 최근 오픈한 비건 카페에서, 두 아들과 친구들과 함께.


물론 어린 나이가 아닌 데다 지난 시간의 우정으로 신뢰가 깊은 우리 둘이기에 금방 없었던 일처럼 지나갈 수 있었지만, 우리의 이 첫번째 말다툼이 서로에게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후아니타와의 싸움 이후로 며칠 간, 그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녀가 얼마나 특별하고 또 고마운 존재인지 돌아볼 수 있었다.








그녀와 나의 인연


그녀와 나의 인연은 4년 전, 내가 아직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이주 준비를 하며 시작됐다. 당시 나는 조카에게 집을 렌트 할 때까지 당분간 묵게 될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두 아이와 함께 머물 수 있는 단독 방으로 좋은 곳을 발견해 예약을 했는데 그곳이 바로 후아니타 집 한쪽에 붙은 스튜디오 형태의 방이었다.


은발의 레게 머리를 하고 맨발로 정원 돌보기를 좋아하는 후아니타의 첫 인상은 보헤미안의 집시를 연상케 했다.


후아니타의 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집 수영장 울타리를 따라 세워진 긴 장대에 나부끼는 깃발들이었다. 형형 색색의 깃발에는 해독 불가능한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세월을 지나며 여기 저기 찢어지고 닳아 있었다. 뉴질랜드 땅에서 백인 할머니를 통해 만난 매우 동양적인 그 깃발들은 마치 옛날 우리 나라 마을의 성황당 나무에서 나부끼는 형형 색색 동아줄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그녀와 가까워지며 알게 된 그녀의 일생만큼이나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우주적 인연을 믿는 우리 둘은 비슷한 면이 꽤 많아 빠르게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내가 뉴질랜드에 도착하고 나서 한 달 후, 1년 정도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떠난 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남겨질 나와 내 아이들이 걱정되어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미리 내가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모든 중고시장 및 알아 두면 편리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주었으며, 내 차에 자신의 토우 바(Tow bar)를 달아주었다. 또, 자신의 절친한 친구들을 내게 소개해 주며 너무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기도 했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후아니타는 나를 내 영어 이름인 'Joy(조이)'가 아닌, 내 한국 이름 'Hyojung(효정)'으로 부른다. 이것이 상당히 고무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후아니타의 숙소에서 나온 후, 뉴질랜드에서 처음 살게 된 집에 전기와 가스를 연결하며 관련 회사들에 전화를 했어야 했을 때였다. 상담원들이 내 한국 이름을 잘 알아듣지도 못해서 엄청 애를 먹었다. 겨우 이름 하나 기억시키는 것 때문에 하루 종일 걸린 데에 엄청난 피로를 느낀 나는 그날로 내 영어 이름을 발음하기 쉬운 'Joy'로 정했다.


그럼에도 후아니타는 나의 원래 이름, 'Hyojung'으로 나를 부른다. 그가 포컬 포인트를 그가 아닌 나로 세팅하고, 내가 자라온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려 애쓰기 때문임을 나는 알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의『꽃』이라는 시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는 참으로 사실이다. 이름은 하나의 의미이다. 내 영어 이름 Joy는 새롭게 열어가는 나의 미래와 닿아 있다. 반면, 그녀가 내 한국 이름 ‘효정’을 불러줄 때, 나는 좀 더 특별함을 느낀다.


그가 부르는 내 원래 이름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을 소환하고 나의 근원을 건드린다.








유목민이자 자연인, 후아니타


KakaoTalk_20210114_041917762.jpg - 후아니타가 찍은 풀꽃 사진 -


후아니타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일곱 살 무렵 프랑스로 이주해서 열 여섯살까지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녔고, 열 여섯 나이에 홀로 인도로 건너가 10년이 넘도록 인도와 네팔, 그리고 티벳 등의 지역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중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중국에서도 살았고, 이후 영국, 미국 그리고 다시 한 번 프랑스에서 살았다.


2003년, 그녀가 쉰이 다 되었을 때쯤 이 곳 뉴질랜드로 와서 정착했다고 하니, 그녀의 유목 생활은 그 역사가 길고 또 범위도 넓다. 이런 배경 덕분에 그녀는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안다. 거기에다 티벳어와 스페인어로도 자기 의사 표현은 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던 그녀가 결국엔 뉴질랜드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녀와 등산을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잦은 멈춤으로 인해 일정이 상당히 지연된다.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올라가는 우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돌 틈에 피어난 작은 꽃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카메라 렌즈에 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눈 앞에 펼쳐진 장대한 풍경을 즐기는 사이 사이 그녀의 관심과 시선은 작은 풀꽃에도 머무른다. 바위 돌과 나무에 낀 이끼 마저도 그녀의 독특한 시선을 거치며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이 곳에서도 언제든 해외로 떠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케이스에 끼워둔 여러 나라의 스마트폰 유심칩을 보면, 후아니타가 아직까지도 얼마나 세계를 자유롭게 나부끼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오랜 유목 생활이 그녀의 삶에 새겨 놓은 것은 무엇일까?


4년 여의 사귐으로 그녀를 충분히 안다고 하기 어렵겠지만, 내가 본 그녀는 인생의 어떤 변곡점에서도 유연하게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며, 또 유연한 만큼 강하다.


전 세계를 자신의 앞마당 마냥 돌아다니는 것 뿐만 아니라, 그녀는 직업도 필요와 열망에 따라 바꾼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이미 그때 그녀는 61세였다) 그녀는 방 다섯 개와 스튜디오 하나를 에어비앤비로 운영하고 있었다.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기 위해 그 집을 샀다고 하는데, 더 많은 방을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본인이 거주할 곳은 원래 차고였던 장소를 손수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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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니타가 직접 차고를 개조해 만든 공간. 가구와 설비 등을 혼자서 만들고 작업했다.



게다가 그녀는 그 이전에는 고가구 딜러였고, 또 오십 살 쯤에는 캔터베리 대학교에서 교사 과정을 공부해서 교사로도 일을 했었다고 한다. 언젠가는 기 치료를 공부해서 사람들과 교감하고 몸을 치유하는 일도 했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카페 오너로 변신한 것이다.


늘 바뀌는 직업 속에서 후아니타의 삶에 남는 것이 없다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 많은 직업들을 거쳐 오는 동안, 삶의 다양한 모습의 속살들을 맛봄으로써,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위험을 몸소 감수해냄으로써 이미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Live life dangerously!




작년 그의 65세 생일에 그의 절친 마미 (Mami)가 손수 구워 선물해준 생일 케익에는 그녀의 다이나믹하고 두려움 없는 삶을 잘 묘사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Live life dangerously!(인생은 위험하게!)'


위기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늘 즐겁게 상황을 이끌어가는 후아니타의 삶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 해 첫 산행으로 함께 Mt. Somers를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후아니타와 우리 일행은 맑은 계곡을 만났다. 다들 잠시 지친 발을 쉬는 동안 갑자기 후아니타가 훌렁 훌렁 옷을 벗더니 속옷 차림으로 차가운 계곡물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어린아이처럼 소리내며 웃었다. 이 곳의 1월은 한여름이긴 하지만 계곡물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녀는 28일째 물만 마시는 금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안전한 것보다는 위험하더라도 새롭고, 즐거운 것을 택하는 후아니타. 오랜만의 산행으로 인해 생겨난 발의 물집도 28일의 금식이 가져온 에너지 저하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 그녀와 나는 살사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해진 스텝을 밟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몸이 뻣뻣해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후아니타는 매주 수업에 참석한다. 나는 피곤해서 엄두도 못 내는 주말 댄스 파티에도 종종 참석하면서.


그렇다. 그녀는 나이 육십 육세의 청춘이다.


열 다섯 살이나 연하인 내가 하는 말로서는 어폐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나는 그녀의 미래가 참 기대된다. 그녀의 바람대로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 창공을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새처럼 그렇게 세상을 유영할 것이라 믿는다. 그녀가 내 시야에서 벗어나기 전에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그녀의 삶으로부터 부드럽게 날아 오르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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