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전남편의 이혼, 둘째 아이 시후의 수술과 장애 진단. 이 모든 일을 내 측근에서 경험한 이는 바로 큰 아들 시현이다. 시현이가 네 살 때 나는 전남편과 별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이혼했다. 공교롭게도 둘째아이 시후의 두개골 수술이 이어졌다.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첫째 시현이는 친구들에 비해, 그리고 아픈 둘째 시후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후의 장애 진단 이후, 많은 것이 시후 중심으로 돌아가던 때였다. 한번은 시현이가 시후를 다시 입양원에 데려다 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현이 손에 있는 장난감마저 떼를 쓰며 요구하는 시후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시후를 달래기 벅찰 때는 가끔 비교적 말을 잘 들어주는 시현이에게 양보를 하도록 했었다.
자신의 장난감을 뺏긴 것도 속상한데, 그것을 양보하라고 하는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나는 시현이에게, 시후가 장난감을 뺏어가고 엄마가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속상한 것인지 물었다. 그제서야 시현이는 '그렇다'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 칠남매의 막내로 자라면서 내게는 꽤 억울한 일들이 많았다. 하나 있는 언니는 나이 차이가 아주 컸고 내 바로 위로는 오빠들만 셋이었다. 오빠들과 싸우게 되면, 나는 동생이라는 이유로 또 여자 아이라는 이유로 잘잘못과 상관없이 무조건 야단을 맞았다.
그때 만약 내게 누군가 '너 참 속상했겠다'라는 말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은 상처들이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시 내 부모님에게는 우리의 감정까지 다독거릴 여유가 없었다. 내가 어릴적 이렇듯 충분한 감정적 지지를 받지 못했었기 때문에 나는 시현이에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시현이에게 매일 질문했다. 오늘은 기분이 어땠는지, 혹은 어떤 특정 행동을 할 때는 어떤 기분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 조언을 해주었다.
다행히 내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아이는 커가면서 나에게 마음의 문을 닫거나 혼자만의 동굴에 들어가버리는 일이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유도 없이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다가도 중간에 멈추고는 내게 자기 감정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엄마, 나 엄마한테 화난 게 아냐. 나도 모르게 속에서 막 짜증이 나서 그래. 호르몬 때문이야.’
동생 시후가 자꾸 귀찮게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엄마, 나 너무 화가 나. 시후를 때리고싶어. 방에 갔다올게.' 그렇게 자기 마음을 내게 알려주고는 방으로 들어가 자기 베개를 주먹으로 마구 친다. 자기 감정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낸 것이 기특하다.
동생 시후가 조금 다른 아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관심이 시후에게 쏟아지는 것에 대해 나는 항상 시현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한편으로 아이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기 위해 시현이와 나만의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기로 했다.
시후와는 아주 쉬운 단어나 문장으로 소통했다면 시현이에게는 훨씬 더 어른스러운 단어와 주제들로 대화를 걸었다. 시현이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특별 대우로 받아들였다.
나는 시현이와 '이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혼' 혹은 '아빠'라는 단어가 금기어가 되어버리지 않았으면 했다. 아주 속속들이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어른들의 그것과 같은 성숙한 대화들을 일부러 시현이와 많이 나누었다.
엄마가 시후에게 관심을 쏟긴 하지만 자신은 엄마와 이렇게 '어른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특혜(?)를 누린다는 것을 시현이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한다. 그런 점이 시현이 나름의 자존감과 공감 능력을 높이는 데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제 시현이는 동생 시후에 대해서 오히려 나보다 더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시후에게 뭔가를 설명하기 위해 진땀을 빼는 것을 본 시현이가 '엄마처럼 설명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직접 시후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제서야 시후는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는 자기가 ‘시후의 언어’를 마스터했다고 뿌듯한 표정으로 내게 일러주었다.
시후만의 언어가 있다는 그 말이 내게 큰 감동이 되었다. 시후가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얼마 전에 시현이가 우스개 소리로 우리 집안의 서열을 정리했다. 평상시에는 시후가 서열 1위, 엄마가 2위, 자신은 최약체이고, 엄마가 화가 났을 때는 엄마가 1위, 시후가 2위, 또 다시 자기 자신이 최약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자기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고군분투해 오던 나와 남들과 조금 다른 시후를 배려해주면서도 아들로서 혹은 형으로서의 역할 이상을 해내고 있던 시현이의 마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시현이는 요즘 하루 최소 여덟 번의 허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내게 계속 안아 달라고 조른다. 아침에 깨울 때와 밤에 잠들기 전에는 늘 시현이 방에 가서 꼬옥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을 해주는데도 '안아달라'는 요구는 종일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는 장난스레 ‘너 애정결핍이야?’ 하고 물으니 큰아이는 '엄마를 안으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꽉 찬 느낌이라 좋아서 그렇다'라고 대답해주었다. 자기 마음을 부끄러워하거나 이리저리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나보다 훨씬 능숙한 것을 보면 어쩌면 시도때도 없는 안아달라는 요구는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존감'에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아이는 여느 고등학생과 똑같이 컴퓨터 게임을 얼만큼 하느냐를 두고 나와 아주 잦은 싸움을 벌인다. 생활 태도나 습관에 있어서도 아직 한참 배울 것이 많은 아이다. 하지만 내가 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이가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고, 최소한 엄마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의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찾고 무엇을 하든 상관 없다. 다만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아이들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이 안정적이고 감정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은 삶의 가장 중요한 터전이자 모든 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아이들이 행복한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 또한 매우 행복할 것이다. 둘째 시후는 형 시현이와는 다른 방법으로 가르쳐나가야 하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내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터득할 때까지 엄마의 역할은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