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팔자가 어때서?

by 조이 킴

내 팔자가 어때서?


얼마전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해 자신과 가족의 운세를 봐 달라고 했다. 졸지에 뉴질랜드까지 와서 올해의 운세를 풀어주게 되었다. 내 친구는 나의 사주 해석이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라며 꽤 좋아했다.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의 해석에는 그는 모르는 나만의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주 명리란 한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 네 개의 기둥(사주)에 하늘과 땅을 더한 여덟 글자(팔자)로 한 사람의 평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보는 운명론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때의 특정한 하늘의 기운이 그 사람의 인생에 새겨진다고 믿는다. 미신적인 뉘앙스를 지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명리학은 음양오행설을 기반으로 한 상당히 짜임새 있고 정교하며 복잡한 학문이다.


내가 운명 혹은 사주팔자를 연구하는 사주 명리학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13년 늦은 가을이었다.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계속해서 상황이 나빠지는 가운데 덩그러니 내 책임으로 맡겨진 두 아들들을 바라보며 이혼과 사업의 위기가 가져온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 밤이면 불안감에 끝없이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느낌은 마치 캄캄한 밤에 낭떠러지 길을 혼자 걷는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막 유행하기 시작한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사주 명리학까지 배우게 되었다. 여덟 글자가 만들어낸 우연해 보이는 조합에 따라 다르게 펼쳐지는 인생이야기에 흠뻑 매료되었다.


그때 처음 본 내 사주에서 뚜렷하게 내 인생과 연결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내 사주가 남편을 상하게 하여 남편 복이 없고, 또 푸석한 땅처럼 평생 동안 건강이 신통치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던 두 가지가 들어맞자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어떤 인생이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


명리학 강의 시간에 풀어본 수많은 사람들의 사주팔자를 통해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좋은 시절과 힘든 시절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인생이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


당시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던 내게 그것은 상당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의 인생만 이런 굴곡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생 역시 그러한 것을 보면서,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거 같지?’라는 자기 연민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소위 팔자 좋은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시기와 질투심으로부터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었다.


사주팔자에서 인생 전체를 보여주는 여덟 글자는 10년 단위로 다른 기운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을 대운이라 부른다. 힘든 시기도 잘 나가는 시절도 최소 10년 정도 지속된다는 말이다. 십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좋은 시절에 십년은 바람처럼 지나가겠지만, 힘든 시절 10년은 상당히 긴 시간일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상당히 긴 시간동안 외부적으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인데, 거기에 늘 그 불행의 기운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일은 더욱 안될 말이지 않는가?


그래서 당시 내가 가장 크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누구나 만나게 되는 힘든 시절을 어떻게 현명하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지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주 명리에서는 행복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저 사주가 좋은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사주가 좋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척박하다는 내 사주팔자 안에서 나는 그 일반적인 추측을 기세 좋게 뒤집어 보고 싶었다.







힘든 시절에도 행복하고 싶다면


나는 인생의 그 어떤 순간에도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힘든 시절에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스토아 철학자 중, 노예 철학자라고 불리는 에픽테투스의 <담화록>에 나타난 그의 삶의 태도는 안개 속 같던 당시 삶에 확실한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인생에서 자신의 통제 아래 있는 일과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일을 나누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만 힘쓰도록 권고한 그의 충고는 참 유용했다. 그는 재물이나 권력,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우리 통제 밖에 있는 것들로 분류했다.


부와 명예 등 외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초연해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담은 일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그것으로부터 담담해지기는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위를 떠나버린 화살에 대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우리의 마음을 수련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빅터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그 어떤 상황도 그 ‘상황에 응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앗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의 결과를 선택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운'의 작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의 자세는 선택할 수 있다.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의미와 행복해야 할 이유를 찾아 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은 그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는 존재라고 프랭클 박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혹한 나찌의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살아나온 그가 한 말이기에 그 울림은 크다.


산다는 것은 혹은 행복이란 것은 사회에서 성공하고 재물과 지위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의 목적 혹은 의미 속에서 정의되고 발견되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조언대로 나는 내 척박한 팔자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정해진 팔자가 좀 유별나다고 하더라도 다만 좀 더 행복하고 싶었다. 매일의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세 끼 밥을 내 손으로 건강하게 짓는 일부터 시작하여 모든 집안 일에 정성을 들임으로 행복을 일구어 가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내가 이 운명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이 내게 근본적인 충족감을 줄 수는 없었다. 운명적으로 '박복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는 일상을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조 디스펜자(Dr. Joe Dispenza)라는 사람이 출연한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바꿈으로써 부정적인 현실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조금 힘든 운명(사주팔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내게 그 힘든 운명을 헤쳐 나갈 능력과 강단이 있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다르게 말하면 그것은 내 안에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무한한 능력과 자원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또 루이스 헤이(Louise Hay)라는 사람은 한 책에서 우리가 태어난 나라, 성별, 성격, 나아가 부모까지도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실인가 아닌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 운명을 '선택했다'는 생각은 얼마나 자신감 넘치는 발상인가? 그녀의 사람의 능력치에 대한 의심 없는 신뢰와 삶에 대한 온전한 주체 의식이 놀라웠다.


나는 더 이상 운명의 장난에 휘둘리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로 생각을 바꿨다. 우선 이혼을 단순히 내 사주에 남편 복이 없어서 일어난 사건으로 치부하지 않고, 내가 온전한 주인의식을 갖고 내 인생을 책임져 나갈 수 있게 된 계기로 받아들였다. 또한 내가 어려서 부터 아파 온 경험은 단순히 건강하지 못하게 태어난 팔자 때문에 일어난 불운한 일이 아니고, 나로 하여금 평생의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체득하도록 도와 준 훌륭한 선생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운명론에서 벗어나 내 인생을 돌아보자 나는 오십 년 동안 아픈 만큼 성숙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내 과거를 부정적으로 낙인찍던 굴레에서 벗어나자 내 마음은 자유로웠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것이라는 것을 멀리 돌아서 다시금 믿게 된 것이다. 사주 풀이의 신비함(?)을 벗은 나의 미래는 이제 나의 몸과 마음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나의 몸과 마음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만들어 가는 데 힘을 쏟는다.


내 미래를 내가 태어난 시간과 명리학자의 견해에만 걸어 놓는 것은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 우리의 무한한 잠재력을 한정 짓는 일이다.


나는 친구에게 올해 운세를 봐 주며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좋은 해석들을 끌어 모았다. 무엇보다 친구가 자신을 믿고 한 발 앞으로 내 딛도록 했다.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힘이 자신 안에 있음을 보게 해주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친구가 더 나은 미래를 행복하게 그려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며 운세 풀이를 끝맺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스마트폰에서 만세력(사주풀이 달력) 앱을 삭제했다.







keyword
이전 07화하루 여덟 번의 포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