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내렸고, 우리는 웃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그날 비는 참 거세게 내렸다.
나는 광안리에서 친구가 사는 양산으로 가는 중이었고,
온몸은 금세 다 젖어버렸다.
원래는 돼지국밥을 먹고 출발하려 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짐은 많고, 비는 미친 듯이 쏟아지고,
결국 나는 식사를 포기한 채
젖은 캐리어를 끌고 택시에 올랐다.
지하철을 타기엔 계단이며 거리며 너무 번거로웠다.
택시비는 꽤 나왔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전혀 아깝지 않았다.
친구 집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낯선 공간, 혼자 있는 조용한 낮.
나는 그대로 몸을 뉘고 한숨 잤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친구가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수제버거를 시켜 먹으며
바닥에 늘어져 시간을 보냈다.
별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웃기고, 괜히 편안했다.
그냥,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저녁이 되자,
“부산 오면 낙곱새지!” 하며 밖으로 나갔다.
비는 여전히 쏟아졌지만,
그날 낙곱새에 소주 한 잔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진지한 얘기도, 특별한 대화도 없었는데
괜히 유쾌하고, 괜히 웃겼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와 술로 2차를 열었다.
근황 얘기, 걱정 얘기, 소소한 일상.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계속 웃고 있었다.
그저 웃음이 자꾸 터졌다.
그날의 공기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지쳐 있었던 하루였는데,
어쩐지 마음은 무척 따뜻했다.
우리가 나눈 건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그날 밤의 편안함은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