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온기
수업을 마친 뒤, 강의실을 나왔다. 눈이 부셨다. 하늘은 청아했고 따스한 봄의 햇살이 자연의 생동을 자극하는 듯, 발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이 싱그러웠다. 건물 주위에 몇 평 되지도 않을 작은 화단이 메마른 캠퍼스에 약간의 생기를 불어다 주고 있었다.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다음 수업이 있었다. 다시 무미건조한 인공적 건물로 들어가 색채 잃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것이 그리 끔찍하지는 않았으나 유쾌하지도 않았다.
모든 수업을 끝낸 뒤, 강의실을 나왔다.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황혼의 시간을 달리는 햇빛은 하늘을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세상은 색채를 잃어갔고 점심때의 싱그러운 느낌이 사라지고 있었다. 햇빛이 땅의 색채를 하늘로 앗아가 버린 듯, 하늘이 무척 미려했다. 미려한 하늘을 무대로 하나의 새가 날았다. 그 모습은 주황색 배경 위로 하나의 검은 점이 곡선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거닐고 있었다. 조금 전에 봤던 새가 떠올랐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와 땅만을 걸어 다닐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대비됐다. 어떤 인간도 오늘 봤던 새처럼 날 수 없다. 날려는 소망조차 없거니와 그런 소망이 있다고 해도 그럴 능력이 없다. 인간은 왜 날 수 없을까?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일과에 지친 듯 몸이 무거워 보였다. 눈에는 생기가 없었고 고개를 숙인 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버스에 사람도,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활기를 잃은 채, 마치 죽지 못한 사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삶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구나…
조용히 되뇌며, 집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이런저런 사색이 정신적 휴식을 방해했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물론이고, 오늘 본 사람들의 떠올려보면, 소망 따위는 없는 삶처럼 보였다.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 하나뿐이라는 한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 그 하루는 즐거움과 설렘, 기대보다는 고단함, 무기력함, 피로로 이루어진 듯하다. 그런 하루, 그런 하루의 반복을 위해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사색에 흐름이 언제 끊어졌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심오하고 불쾌한 사색 때문이었을까? 잠자리가 뒤숭숭했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시간을 보니 조금 더 잘 수는 있었으나, 그 애매한 시간을 자는 것보다는 일어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할 일도 없고 어젯밤 나를 괴롭혔던 정적의 사색을 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싶기도 했기에 산책을 나갔다.
아직 날이 어두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명의 빛이 캠퍼스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한낮의 청아한 하늘의 모습, 저녁의 미려한 황혼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여명, 비유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보통 무언가에 희망이 시작될 때,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 같은 걸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삶에 무슨 여명이 있을까? 메말라 버린 현대를 살아가는 문명인에게 여명이란 단어는 공허한 듯 보인다. 문명의 이기 속 풍요롭고 평안한 삶을 산다지만 그런 삶은 어딘가 모르게 궁핍해 보인다. 색채가 없는, 다채로움이 없는 그런 삶.
어디선가 사색에 방해가 될 만큼 큰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을 추적해 나갔다. 하나의 건물이 보였다. 예술대학이었다. 그 안에는 공연을 준비하는지 합주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시간은 이른 아침, 거의 늦은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밤부터 계속 연습을 한 걸까? 아니면, 일찍 나와 연습을 시작한 걸까? 둘 중 무엇이 되었든 가벼운 마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소리로부터 멀어져 계속 걸어갔다. 그 건물의 입구에는 전시회 일정이 고지된 안내판이 있었다. 창문 밖으로 불빛이 뿜어나왔다. 태양의 강한 빛에 가려진 그 빛은 미세했으나, 불이 켜진 강의실과 불이 켜지지 않은 강의실을 구분할 정도는 되었다. 분명, 전시회를 준비하는 미술 대학 학생들이 작업을 하고 있을 터였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동기가 무엇이 되었든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침이 되었고 1교시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준비한 뒤 다시 학교로 향했다. 아침이었기에 대부분의 음식점은 문을 닫았으나 일부 프랜차이즈 전문점, 카페 몇 군데는 문이 열려있었다. 대체로 점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였으나, 아르바이트생처럼 보이는 대학생도 간혹 보였다. 이제 일을 시작했고 힘이 남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일까? 눈에는 생기가 돌았고 심지어 미소마저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저 사람을 웃게 하는 것, 웃을 수 있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없었다.
1교시 수업을 마치고 2교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오늘의 2교시 수업은 초청 강연으로 대체되었다. 강연장 뒤쪽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타의 강연들도 그러하듯, 앞줄에 있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강연에 대체로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 강사의 눈에서 즐거움, 보람, 행복 등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에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걸 읽을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난 뒤, 강연장을 나왔다. 눈이 부셨다. 어제 같은 시간에 그러했듯, 하늘은 청아하고 얼마 되지 않는 식생이 있는 곳은 싱그러웠다. 무성한 풀들 사이로 곳곳에 꽃이 피어있었다. 그중 하나의 꽃에 노란 나비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잠깐 뒤, 나비는 꽃에서 나와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그 몸놀림이 매우 가벼워 보였다. 그렇게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나비는 어느 순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어제 새를 보고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인간도 오늘 봤던 나비처럼 날 수는 없다. 그리고 어제 난 삶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라고 잠정적인 답을 내렸다. 이른 아침에 들었던 합주 소리, 불빛이 새어 나오던 강의실, 생기 가득했던 아르바이트생의 모습, 만족스러운 눈으로 강연을 진행하던 강사. 이 모든 게 떠올랐다. 인간은 왜 날 수 없을까?
꿈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만약, 그 무게 때문에 인간이 날 수 없는 거라면, 날지 않아도 좋겠다. 난 이 무게를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고 있다. 오늘 봤던 모두가, 꿈을 가진 모두가 그러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