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이제라도

by 김인

1

환자복 입은 K를 보고 나는 한숨을 참았다. 하지만 표정은 감출 수 없다. 내 얼굴이 외치는 당혹감에 K가 쓴웃음을 짓는 것이 보였다.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문병와서 아픈 사람에게 상처를 주다니. 며칠 전 K가 '바쁘지?'라며 보낸 문자메세지는 맞춤법이 맞고 마침표까지 단정히 찍혀 있었다. 시간 되면 와달라고 하면서 말미에 얼마 안 남은 지도 모르겠다고 적어 보냈다. K가 왜 나에게 연락했는 지 안다. 내가 가족을 병으로 먼저 보낸 경험이 있으니 이심전심, 나은 상대였겠다.

"나 좀 말랐지?"

여윈 몸에 침대가 커 보였다. 주렁주렁 위아래로 관이 늘어서 있고 K의 피부는 표백한 듯 창백해서 어디까지가 플라스틱이고 사람 손목인 지 헛갈릴 정도다. 나는 반사적으로 링거대를 봤다. 수액과 미백색 영양액 뿐 차광 봉투를 쓰는 항암제는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길게 늘어진 도뇨관과 봉투. K는 회복은 고사하고 미약한 치료나마 접은 상태로 보였다. 언제 마지막 항전을 하게 될까, 다시 한숨을 삼켰다. 가혹한 고통, 고열과 오한, 진통제에 기댄 인사불성의 사투가 이 몸에도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목구멍이 오그라들었다. 감당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숱많던 K의 검고 탐스러운 머리칼은 흔적도 없다. 단단한 공같은 머리 위를 낙엽색 니트 모자가 감싸고 있다. 나는 의자를 찾는 척 고개를 숙여 눈물을 질끈 참았다. 물색없이 한참 뒤에야 대꾸했다.

"원래 늘씬했잖아. 더 예뻐졌어, 눈이 커졌네."

"살 빠져서 그래."

K가 눈썹이 없는 눈으로 웃는다.

"선물 가져왔어."

포장을 풀어보이자 K는 특유의 둥글고 귀여운 입매를 보여주며 웃었다.

"크리스마스 색깔이다, 얘. 고마워."

하얀색과 빨간색 환자 모자였다. K는 잘 쓰겠다고 하고 내게 이런저런 얘길 시켰다.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 지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고 벌이가 괜찮은 지 물었다. 자기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2

며칠 뒤 전화한 사람은 K가 아니라 그 남편이었다. 자신이 꼭 가야 할 일이 있는데 K를 반나절만 좀 봐줄 수 있냐는 소리였다.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면서 이대로 두면 큰일날 것 같다는 말에 알겠다고 하고 병실을 향했다. 남편분의 당부에 따라 미리 말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얼굴 보고 물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K는 날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잠시 떨떠름한 얼굴이 될 뿐이었다. 우리는 여자들의 수다를 시작했다. 저녁이 되었다.

"이제 가봐야지 않겠어?" K가 웃는다.

"어, 오늘 시터를 쓰고 왔어. 좀 늦게 가도 돼. 네 상황이 어떤 지 몰라서 밤까지 부탁드렸어."

" 나 때문에 돈 썼네. 우리 남편 전화했을 때 당황스러웠지?"

"아니. 너 생각하시는 마음이잖아. 혼자 두지 않으시려고."

"아니야."

"......."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 아니야."

K가 속을 펼쳤다. 암 진단 받은 후 남편분은 괴로워하고 위로해주었지만 거기까지였다고 한다. K는 수술실 들어가 개복하고서야 전이가 너무 심하다는 걸 알게 되어서 수술도 못한 채 마지막을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의사는 항암치료를 하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고, K는 미련이라도 줄이자는 결심으로 받아들였다. 하루 입원해 주사를 맞고 퇴원하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남자 환자들은 모두 보호자가 있지만 K같은 여자 환자들은 대개 혼자였다. 대여섯번 항암주사를 맞고 나자 K의 머리카락은 모두 빠졌고 전신이 피폐해졌다. 동시에 K의 가정은 멈췄다. 그때그때 보이는대로 대충 닦고 라면 먹고 지내는 남편은 고2인 아들애에게 짜증내는 횟수, 시어머니에게 연락하는 횟수가 늘며 K와 마주앉는 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K에게 결정타는 친정어머니였다.

"연 끊은 지 십년이야. 근데 남편이 연락해 보라고 자꾸 그랬어. 그게 순수하게 들리지 않았어."

"응?"

"알리라는 소리가 아니라 친정에 가서 몸조리를 하라는 소리였지."

"설마."

"그랬어. 친정에 내가 가기는 갔어. 근데 문앞에서 돌아올 수밖에, 정말 그럴 수밖에 없더라. 다시 엄마 얼굴을 보면 오히려 암이 커질 것 같아서. 그런데 남편이 화를 내더라구. 내년에 애도 고3인데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친정에 연락해서 어머니를 오시게 했고, 엄마는 날 보자마자 예전 그대로셨지. 결국 화내고 가셨어."

"......."

"그리고 시어머님이 통보해 왔어. 와서 살겠다는 건 아니지만 손주와 아들에게 자기가 필요해보인다고. 오늘, 남편 거기 간 거야. 역에 어머니 모시러."

내가 지금 무슨 얘길 들은 건가 싶었지만 그림은 그려졌다. 가족이 항암치료받던 시절, 치료실에서 나는 여자환자들이 밤이면 숨죽여 우는 모습을 반복해서 봤다. 그녀들은 대부분 병원에 혼자 왔다. 아픈 몸으로 주사 한병을 다 맞으면서도 집에 전화해서 식구들에게 밥국을 해놓고 나왔다거나 잊지 말고 뭘챙겨 가라거나 하며 바쁘다. 그러다 어스름이 깔리고 식구들도 잘 시간이 되고 어둠이 표정을 가려주면 그녀들은 고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커튼을 치고 안으로 흐느껴 운다. 그것은 청승맞거나 초라한 풍경이 아니었다. 자신의 품위를 위해 민폐를 최소로 하고 혼자 슬퍼하는 존엄이었다. 그녀들이 나의 미래라서 나 역시 그녀들을 혼자 둔 사람들이 싫었다. 그녀들은 병실에 사람 여럿 있을 때 더 큰 소리로 아내에게 역정을 내던 어떤 할아버지 환자들과는 반대였다.

"K야, 친정 앞에서 돌아온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난 큰아버지한테 당했었어."

"......"

"근데 엄마가 나한테 했던 말이 더 가해였어. 너만 잊어버리면 된다고 하셨지. 나쁜 꿈이라고."

"... 네가 맏딸이지?"

"응. 알지? 감정 쓰레기통."

"그래. 딸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이들 그렇지. 우리 바로 이해하잖아."


3

K는 얼마 후 갑자기 떠났다. 나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K가 자기는 거기 없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K의 말을 적어본다.

"죽을 때 되니까 내가 어떻게 살았는 지 보여. 몸이 묶인 채로 영사기 앞에 앉는 거야. 평생 도망가고 도망다녔지만 이젠 꼼짝없이 붙들려서는, 강제로 지난 인생을 돌이켜 보게 돼. 그게 얼마나... 할 말을 찾을 수 없다고밖에는. 그리고 이렇게 아프니까, 돈만 계속 들고 도움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가니까 관계도 드러나. 거의가 가진 것을 즐기기 위해 어울렸던 공범들이었어. 부담가면 바로 멀어질 수 있는 그런 관계. 아이가 울어주어서 내가 얼마나 위로받았는 지 너는 모를 거야."

내가 말하려 하자 K는 고개를 저었다.

"윤색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 기회야. 이제라도 인정하고 싶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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