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으로 만든 가족

J 가족에 축배를 들며

by 김인

반백이 가까오며 변화를 마주한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들은 졸혼을

나와 연배가 비슷한 애들은 이혼을

나보다 연배가 아래인 이들은 비혼을 많이 한다.

오늘은 나보다 서너살 아래인 J의 비혼 이야기를 적어 본다.


J는 좋은 사람이고 근사한 여성이다. 남자 선배 표현으로는 '잘난 여자'다.

유능하고 재기발랄하던 청년은 원숙하고 아름다운 중년으로 자랐다.

직장에서나 친구로나 인정을 받고, 알뜰엄정한 성격이라 생존 토대가 되는 저축도 상당히 있으니

주변에서 결혼 얘기가 늘 있고 소개도 넘쳐났다.

J도 열린 사람이어서 나는 그녀의 청첩장을 기다려 왔다.

삼십대 초반에 J가 자신의 미래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자아실현에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꼭 들어있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일기에 적으며 이렇게 좋은 사람이 꼭 배우자로 어머니로 쓰임을 받아 피어나길 기도했다.


J는 비혼 가족을 선택했다. 엄마를 병마로 잃은 조카들과 가족이 되었다고 한다.

J의 언니는 이혼하고 딸 둘과 살다 작년에 먼저 하늘로 가셨다.

J가 휴직하고 언니 병간호를 분담했었고 어린 조카들을 보며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들 아버지에 대해 물을 수 밖에 없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비혼의 이유로 향했다.


"애들이 싫대요. 아빠는 자기들 귀찮아 한대. 관심도 없다고."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나 보네......"


"언니(그녀가 날 부르는 말). 좋은 아버지였으면 이혼 안했겠죠.

형부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그냥 그래."


"그냥 그렇다는 건 뭐야?"


"언니. 남자들 대부분 여자를 그리고 아이를 같은 사람 취급 안 해요."


"......"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기가 잘못해도 부드럽게 받아달라고 해요?

자기 마음만 앞세우면서 왜 안 만나주냐고 화내겠어요?

제사 때 엄마한테 굴욕 노동시키면서 며느리 데려온다고 해요?

같은 남자는 두려워하고 여자는 만만하게 보고 싶어 해요.

직장에서도 남자 후배가 그러더라니까? 여자 상사한테는 존경심이 한계가 있다고."


"왜?"


"약하대요. 여자는 상사래도 약하대. 되게 웃겨. 자기 소개지. 본인이 여자 앞에선 약해도 되고 싶은 거야.

나도 그래서 결혼 못했어요, 언니.

날 인격으로 대우하고 내면을 중시하기보다는, 자기에게 소용이 되는 여자?

그것도 구체적인 여자가 아니라 여성성 자체를 필요로 하는 남자들이 많아요, 언니."


"전에 네가 만났던 K는 똑바른 사람 같았는데."


"맞아요. 그 사람은 남녀 가리지 않고 사람으로 존중해요. 아이도, 사랑할 사람이예요.

일단 사람이라는 존중이 먼저고 그러다보면 사랑스럽게도 되잖아요.

해서 맞아요, 사랑했었어요. 결혼할 뻔 했는데, 결국. 못 넘더라구요, 그 구조를요."


"구조?"


"상견례 자리에 그 사람 어머니가 오셨는데 눈물을 참지 못하시는 거예요.

어머니야 그러실 수 있고 다독여드리는 것도 좋은데 결혼 준비가 그 뒤로......

어머니 눈치 보는 모습에 오만정이 떨어져서 헤어졌어요.

K는 일년에 며칠만 참으라지만 며느리는 그런 대접을 받는 자리라는 거니까.

여자 배우자는 그런 자리인 거야. 노동자. 책임자. 아이 낳았으면 도와준단 소리에 매여 이혼도 못했겠죠?

도와준다는 소리가 얼마나 서러운 지 남자들은 모르고 싶어하더라구요. 같이 한다는 건 머리에 없어."


"무슨 말인 지 알겠다. 하지만 조카들은 자라잖니. 독립할 거고."


"언니. 사람은 결국 혼자잖아요. 그래도 조카들은 나 병간호 해준대요.

내가 저희 엄마 지켜줬다고 나한테 딱 약속을 해줬어요. 우리는 서로 책임지기로 했어요.

어떤 남편이 아내 병간호 해준다고 약속을 하겠어요.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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