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축원하며
1
K는 나가기 전 집을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곧 올 텐데 뭘,하고 K의 딸이 말했지만 우리 모두 K가 왜 그러는 지 알고 있었다. 따님 역시 대수롭잖다는 듯 던지는 말투였지만 엄마를 보지 못한 채 턱을 떨 정도로 슬퍼했다.
나는 K를 따라 집 구경을 했다. 은발 머리를 곱게 틀어올리고 파란색 털목도리를 두르고 하얀색 정장을 입은 할머니 K는 마루에 있는 책장부터 살펴본다. 큰 책장 두개에 한눈에 봐도 손때가 타고 가장자리가 늙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배치는 서점식 분류와 다르다. K의 머릿속 지도를 따라 독특해진 것이리라. '한국의 전통색' 옆에 '모시한산'과 '토지'가 꽂혀 있고, '수상록' 옆에는 두꺼운 필사 공책이 꽂혀 있다. 그러고 보니 K와 내가 만난 것도 필사 모임에서다. 우리는 말없이 모여 음악이나 잡담없이 정시에 정해진 자리에 앉아 각자 필사를 하고 헤어지는 모임에 다녔다. 모임은 처음부터 두달짜리였고 우리는 파하는 날에야 이름 없는 자기 소개를 약간 하고 다시보지 않을 사람끼리의 개운한 미소를 하고 스쳤었다. K와 내가 다시 마주친 것은 대학 병원 대기실에서다.
"어, 혹시......"
"안녕하세요?" 내가 밝게 웃고 다가갔다. 이십년 넘게 차이가 지는데다 K가 스스로 나이를 경계하는, 조심스럽고 예의바른 어른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싹싹해야 할 쪽은 나였고 반가웠다.
"저희 아버지 진료 따라 잠깐 왔어요. 어디, 여기 진료 받으세요?"
"아뇨. 나도 친구 면회 왔어요. 요 위에 입원해 있는데 잠깐 다른 손님이 와서......"
K는 나처럼 말을 똑똑 끊지 않고 여운을 남기며 마침표 대신 빙그레 웃는 여인이었다. 어깨를 감싼 까만 벨벳 자켓은 먼지 하나 없이 윤기가 부드러웠고, K의 치아 역시 고르고 청결하게 보였다. 우리는 잠시 나란히 앉아 얘기했다. 내 입이 어쩌다 왜 그랬는 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버지 일도 있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고 K에게 말하면서, 간단한 진료라도 병원에는 둘이 가는 것이 나은 것 같다고, 혹 주변 누군가 혼자 진료 받게 되면 저를 써달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오지랖을 부렸다. K는 고맙다시며, 얘기 끝에 자신이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다는 소리를 했고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솔직히 선생님이 걱정되지는 않아요. 어딘가 굉장히 단단하게 느껴져서요. 그런데 놀랍네요. 어르신들이 보통 자녀들 얘기부터 하시던데, 저희 아버지도 그렇구요."
아버지는 그날도 진료 순서 확인하는 간호사에게 내 딸이 새벽차 타고 와줘서 왔다,는 자랑을 하셨다.
"사랑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K는 좋은 말씀을 수줍어하며 말씀하셨다. 반년 후 K가 진료받는 날에 동행하게 되었다. K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고맙다고 해달라고 정정했다. K는 아들딸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연신 고맙다고 했다.
"신장암은 진행이 느립니다."
의사의 말은 머리 위에 붕 떴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하얀 가운이 갑자기 눈이 부시게 느껴졌고 형광등 불빛이 갑자기 따갑게 느껴졌다. 의사의 목소리가 다시 K의 운명을 선고했다.
"이미... 상당히 진행이 되었어도 그렇습니다. 수술은 의미가 없고, 이식 안됩니다. 되려 몸에 무리갈 수 있구요."
"... 말기인가요?"
K의 나직한 목소리에 의사는 화면을 본 채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K는 미동도 없다. 유리알 같은 눈으로 의사의 가슴께를 향해 입술만 달싹였다. 아까보다 작아진 음성이 들린다.
"기대 여명이...... 일년이 안 되지요?"
"사람마다 다릅니다. 드물지만 증상이 멈출 수도 있구요."
의사답지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료실 안의 모두가, K를 뺀 모두가 K에게 압도당해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보호자가 앉는 의자에 앉아 있던 나도, 날 거기에 앉으라고 말하고는 진료실 입구에 서 있던 간호사도 어느새 K 뒤로 와 서 있다. K보다 젊어 보이는 의사는 잠시 화면을 응시하더니 내게 물었다.
"따님이십니까?"
"아뇨. 친굽니다."
"친구......"
나중에 K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고, 신선하고 기뻤다고 내게 얘기해주었다. 진료실을 나오며 K는 다음 진료일을 잡는 간호사에게 괜찮다고 했다. 조용히 그러나 부지런히 1층 로비로 걸어가서는 진짜 따님에게 그리고 아드님에게 전화했다. K의 어조는 미끄러지듯 걸어온 것처럼 평온했다.
"그래, 전화 괜찮니? 한 이분만. 그래그래, 저기... 내가 병원 진료 왔는데. 신장암이라고, 일년 못 남았다고 해. 만나서 얘길 좀 하자. 저녁에 집에 들를 수 있겠어?"
담담한 태도에 나까지 숨이 막혔다. 예상을 하고 온 것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지만 K의 평평한 미간을 보며 알아졌다. K는 참고 있었다. 이제까지도 그렇게 살아오셨을 테지. 노인의 진실을 눈으로 봤다.
"제가 댁에 데려다드려도 될까요?"
"아뇨. 택시만 좀, 택시 타면 되요."
"요양보호사 교육 때 배웠어요. 걱정되어서가 아니고요, 같이 있는 편이 나은 때가 있으니까요."
K가 고개를 숙였고 주름진 손등 위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는 손으로 그녀의 소매를 덮어 얼굴에 이어 옷까지 얼룩지는 것을 막았다. 내 손등이 미지근한 눈물을 받았다. K가 오늘 외유를 위해 차려 입고 온 아름다운 개나리색 옷이 눈물에 젖게 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진료 마치고 서촌에 있는 고졸한 한과 가게를 찾아가기로 했었는데. 암으로 먼저 간 내 친구는 좋아하던 청바지를 입었다가 대변을 흘려 비참해 했었다. 그런 증거는 사람을 무너지게 한다. 그런 기억까지 겪어줄 필요가 없다.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고, 바로 다음날 K는 감사 인사와 함께 연락을 주셨다. 며칠 후 아드님이 문자를 주셨는데 엄마를 닮아 과묵하고 차분한 성품 같았다. 내가 입원하시는 날 가봐도 되냐고 묻자 '친구분이 와주시면 고맙지요'하며 집으로 와 같이 이동하자고 하셨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 아침이었지만 하늘은 한가을처럼 투명하고 파랗고 깨끗했다. 고개를 돌리면 입에서 나오는 한숨이 하얗게 흩어졌다. 세상이 살얼음같구나, 나는 천천히 걸으며 슬펐다. 사람을 둘러싼 무진장의 허공이 얇게 얼어 있는 것 같았다. 조약돌 하나를 던지면 금이 쫙쫙 갈 것이다. 살얼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기가 있을까, 또 얇은 얼음이 있을까. 세상은 물리이지만 정념이기도 하다. 아니 정념이어서 물리부터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원룸 건물 입구에서 K와 눈매가 꼭 닮은 아드님이 차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인사했고 집으로 와 K와 이마가 같은 모양인 따님과 목례했다. K의 남편이 어찌 되었는 지 내가 어쩌다 K와 알게 되었는 지 우리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고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2
K는 책장을 시선으로 훑고 아니 책에 인사를 보내고는 모서리에 둔 화분을 거쳐 주방과 컵 하나, 밥그릇과 국공기도 딱 하나씩인 싱크대로 발을 옮긴 후 방으로 미끄러졌다. 옷장을 여니 색상별로 걸어둔 천조각들이 팔레트처럼 화사하다. 소리도 나지 않게 옷장을 닫은 후 그녀는 침대로 눈을 주었다. 침구는 그녀가 좋아한다던 밝은 파란색이었다. 극세사 침구는 결고운 올을 빛내며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프레임에 얹혀 있다. 집은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듯 말끔한 상태였다. 나는 사실 텅 빈 집을 상상했었다. K가 민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무척 독립적인 성정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간을 자박자박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느꼈다. K는 자녀들이 텅 빈 집을 보며 슬퍼할 것을 염려한 것이 아닐까. 나중에 자녀들이 치우기 편하게 정리해둔 것 같다. 지난번에 왔을 땐 컵이 두어개 보였으니까.
K는 내게 차 뒷좌석에 자신과 같이 타자고 했다. 차가 한강다리에 들어서자 하늘 사이에 뜬 것처럼 비현실적인 기분이 되었는데 손에 감촉이 다가온다. K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배웠어요. 선생님한테."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도 용기라는 걸요. 누구한테, 네, 나는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사는 게 용기인 줄 알았어요. 이제라도 배웠으니까 다행이죠. 고마워요."
"......" 내 시선은 K의 무릎으로 떨어진다.
"가면 누워 있다가 기운이 빠지고 졸리고, 기저귀로 대소변을 받게 되지요? 말기 환자 어떤 지 알고 있는 것 말해줘요."
"개인차이가 있지만... 솔직히 기저귀는 많이 안 쓰십니다. 먹는 양이 줄어들어서 대변이 많지 않아요. 환자분들 대개 뭘 먹고 싶지도 않게 되요. 자연적으로 식욕이 떨어지는 것이고 억지로 먹는다고 근육으로 가지 않구요. 병세가 악화되면 못 걷게 되고 누워 있다가 소변줄을 달게 되고...호스피스이니까 진통 처방 잘해줄 겁니다. 하지만 말씀을 하셔야 병원에서도 도와줄 수 있어요. 멍해지기 시작하면 가족들과 신호를 약속하시는 걸 권합니다. 아프면 이마를 찡그리는 신호를 하시겠다든가, 네."
"많이...아프겠지요."
"상당히 아픈 시기가 있습니다만, 개인 차이가 있고 진통제 도움 받으시면 곧 진정됩니다. 사실 뒤... 뒤로 갈수록 기운이 빠지지 통증은 크지 않다고 해요. 그...며칠 전부터는 혼수상태에 접어드시는 것이 일반적이고 되도록 정신이 맑을 때 하고 싶은 말씀 하시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연락하고 싶은 분들 꼭 연락하시구요."
"다행이고, 고맙네요." 그녀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웃는 것 같다. 나는 K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말한다.
"가시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만 잡수세요."
"하고 싶은대로 지내라는 거지요?"
"네."
"고마워요.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것 있으면 문자 보내도 되요?"
"그럼요, 그럼요."
나는 고개를 들어 K를 보았다. 내 눈은 뜨겁고 흥건한데 K 눈동자는 하늘처럼 맑다. 살짝 얼어 있다.
"제가 면회를,"
"아니요. 오지 말아요."
"......"
"덕분에 도움 받는 것 배웠지만 사람은 지긋지긋하게 자기대로 살고 싶어하죠. 나도 그래요. 문자 보내면 답변 주세요. 그건 청할께요. 나, 도와주세요."
"......"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