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예지력
난닝구는 친구다. 그냥 아저씨여서 편하고 셈속 없어서 편안하다.
그의 지난 역정을 떠올리면 왜 그런 선택을 해서 이렇게 사나 싶지만,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왔다.
저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성취인 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마음대로 살 수 있다니요.
그에게서 명예나 돈을 아쉬워하는 기색을 느낀 적이 없다.
그는 대개 지금 하는 것을 좀더 잘하고 싶어할 뿐이며, 입에 풀칠하는 자체를 감지덕지하다보니 잘 웃고 산다.
자존심이 강하기보다는 있는대로 사는 사람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난닝구'(별명)처럼 쾌적하다.
해서 그는 작은 자석처럼 사람을 붙인다. 화창한 날씨가 나들이를 불러들이듯 마주한 사람에게 기분 좋은 고양감을 불어넣는다.
그의 작업실에 가면 다들 입이 술술 풀린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컨테이너 작업실.
무슨 작업이냐면, 그애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작업이다. 목공, 자개, 염색, 가구 만들기.
난닝구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만큼 하는 것을, 열심히 해보고 실패로 끝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자기 아이가 뭘 하고 싶다고 할 때도 왜, 언제까지, 얼마나를 따져 묻지 않는다.
삶을 축제로 즐길 수 있는데 숙제로 허비하지 말자는 신조가 가풍이다.
오늘 그는 직접 담근 동동주와 희한한 냄새를 풍기는 말린 고기를 친구들 앞에 내왔다.
이번 총선 결과를 얘만큼 정확히 맞춘 사람이 없다.
조국혁신당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기세를 낙관했다.
그에 따르면, 조국은 미움은 받을 수 있어도 민중 대다수가 혐오를 느낄 부류는 아니라고 한다.
자신은 진짜 개털이라 지식인의 전전긍긍을 알아본다나.
"평론가들, 200석 쉽게 말하더니 아쉬워하대? 압승인데.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 넘긴 야당이잖아. 최초야."
"아니지. 예전 박 캠프가 얼마나 득세했는데."
"그때는 여당이었잖아. 사람들이 대개는, 정국 주도권이 있는 여당에 힘을 실어주려고 하지.
야당에 과반을 주는 일은 없었어. 이번엔 진짜 괘씸했던 거야."
얘는 모르는 게 없다. 코인도 얘가 맛 간 것 같다고 하면 떨어진다.
똑똑하지, 말 잘하지, 소탈한 매력에 겸손하기까지 하니......여러 사람이 아까워했다.
세상에 나가 야심을 부려보라고 수차 권유받았지만 그는 작업실 안에 들어가 잔잔하고 부지런하게 산다.
자기 밭 가느라 자신을 알리는 데는 관심이 없다. 아니 유명세를 두려워해서 유투버를 쫓아버렸다.
요즘은 나무 자투리에 레진을 부어 식탁을 만든다면서 니스 냄새를 풍긴다.
레진을 만나 더 빨갛게 보이는 나뭇결은 노을 같기도 홍시 같기도 하다.
집중할 때면 벌겋게 달아오르는 그의 이마가 생각났다.
그의 작업실은 그대로인데 새롭다. 늘 뭔가 달라져 있는 것이 그대로다. 난닝구는 진화한다.
"대통령이 좀 바뀔까?" 한 친구가 우리를 바라보며 그러나 난닝구에게 들으라는 듯 말한다.
"사람 못 변하겠지. 탄핵은 못하는 의석이니......
자기 딴엔 누구한테 상처입고 누구한테 배신당했다면서 힘들어하고 있지 않을까.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고, 그런 사람은 자기 기분이 세상이고 날씨지."
난닝구의 대꾸에 한숨이 섞인다.
"난닝구 넌 정치 평론을 좀 해봐."
"여기니까, 평범하니까 보이는 거야. 내 주변이 정확히 총선 결과 비율이야."
"......"
"학교 때 배웠잖아. 민중이면 되지. 자꾸 나한테 다른 것 되라고 하지 마."
그냥 살다 그냥 죽으면 어떠냐는 설렁설렁한 난닝구.
입에 풀칠하고 민폐 덜 끼치고 살면 사람 되는 것이라는 좋은 부모.
변치 말았으면 좋겠다. 난닝구는 난닝구가 되었습니다. 더 뭘 증명할 필요가 없지요, 암요.
얘기 중에 정계로 들어간 동문 Y가 자기 프로필에서 대학을 지우고 명문대 대학원만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치하려면 간판이 중요하다면서 대학을 바꾸더니 대학원까지 업그레이드 아니 학위 덧칠을 했구나.
누가 Y 학위를 궁금해하겠냐고, 아무도 안 보는 프로필에 왜 저러고 사냐고 한 친구가 비난하자 난닝구는 대꾸한다.
"Y는 보잖아. 바꾼 프로필 보며 기분 좋았을 거야."
난닝구는 변치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정치인은 변해주셨으면 좋겠다.
민중의 수준이 높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