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에게
"그럼 두시간만. 정말 미안하다."
"또."
"고마워. 정말정말 고마워!"
친구 명주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고개를 숙인다. 얘는 이름처럼 마음씨가 비단결이다. 예의도 상급 비단처럼 매끄러운 지 어머니 간병 잠깐 맡기며 뭐가 그리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주춤주춤 걸어나간다. 나는 병실로 들어가기 전 박카스를 들이켰다. 명주에게 말하지 않은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명주는 난소암 투병을 하며 아들 하나 딸 하나 가정을 꾸리는 친구다. 직장 동료로 만났는데 정작 회사는 몇년 못 다녔다. 명주의 아기는 기관지가 약해서 감기에 자주 걸렸다. 명주는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자기 아기가 다른 아이들에게 감기를 옮긴다는 핀잔을 몇번 듣고 사표를 냈다. 명주의 남편과 시댁 역시 일하는 며느리가 좋다던 결혼 당시 의견을 접고 퇴사를 강권했다. 아픈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이렌이었다. 몇년 후 명주는 둘째 아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반짝이는 딸랑이를 사간 내게 딸이라 기쁘다고 말했다. 운명이 벌충할 기회를 주었다면서 한숨을 깔았다. 그때 들었다. 친정 역시 명주 위로 오빠 하나라 아들딸 하나씩인데 가족과 친지 모두 오빠를 편애했다고 한다. 좋은 것은 오빠 먼저. 가사와 돌봄 등 챙김 노동은 딸과 함께. 어머니는 노골적으로 오빠를 사랑했고 아버지는 말없이 딸을 배제하며 아들만이 자기 승계자라고 인정했다. 명주도 말했지만 사실 흔한 얘기다. 70년대생에게 낯설지 않다. 80년대 90년대는 다를까, 얼마나 다를까 나는 어린 후배들에게 종종 물어본다. 선하고 바른 명주는 아들과 딸을 잘 길러내었다. 명주는 사랑하려고 엄청 노력해서 사랑에 성공했다. 명주의 아이들은 엄마가 자길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한 채로 자랐다.
세월이 흘렀다. 기관지가 약했던 첫 아이가 군대에 간 후, 명주는 중년이 되어 폐경이네 관절염이네 골골 앓더니 이제 암을 앓는다. 하지만 명주가 내게 전화한 것은 친정 어머니 때문이었다. 친정 어머니가 발목 수술을 하셨는데 자기 항암치료 일정과 겹쳐 돌보아드릴 수가 없다고, 몇시간 도움을 구한다고 했다. 혼자 있으면 불안해하신다는 설명을 한다. 내가 '요양보호사 자격 있으니 편히 불러'하면서 자청하지 않았냐고 웃자, 정말 괜찮겠냐면서 힘없이 묻는다. 항암치료하는 네 보호자는 있냐고 내가 묻자 명주는 자긴 필요없다고 웃으며 어머니 간병인을 구한 것에 크게 안도하는 눈치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길래 나는 '고맙다'가 더 듣기 좋다고 말해주었다.
저 멀리 작아지는 명주를 보고 병실로 들어가자 플라스틱 냄새가 난다. 안쪽 침대로 다가가자 명주의 수십년 뒤 모습같은 명주의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내게 고개를 까딱 굽힌다. 은발 아래 목에는 아마 명주가 둘러주고 간 것 같은 스카프가 둘러져 있다. 병실 앞에서 우리가 얘기 나누는 사이, 명주 어머니가 퇴원짐 꾸리는 옆 환자에게 '역시 딸이 있어야 한다'면서 자랑한 그 스카프 같다. 2인실 병실에 지금은 우리 둘 뿐이었다. 명주 어머니는 텔레비전 소리 싫은데 옆 자리 비어 잘 되었다시며 휴대폰으로 찬송가를 트셨다. 나는 천연스럽게 웃는 낯을 하고 어머님 얼굴과 발을 닦아드리면서 찬송가 위로 나직이 깔리는 아드님 자랑을 들었고, 어머님이 원하는 시편 구절을 찾아 읽어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되자 병실 불을 껐다. 약속한 두 시간이 지났으니 가방도 챙겼다. 침대로 가까이 갔다.
"아유, 오늘 고마워요. 잘가요." 노파의 입에서 박하 냄새가 난다.
"아드님께 주신만큼 명주에게도 주세요. 그리고 나서 간병시키세요."
"이게 무슨......"
어둠 사이로 노인의 눈알이 번쩍 커진 것이 보였다. 달밤이 노파의 얼굴에 내려앉아 조굴조굴한 눈가 주름 가운데에 구슬이 빠진 것처럼 안광을 빛낸다. 맑아보이기도 하고 소름끼치기도 한다.
"명주 아픈 것 아시죠? 쟤 다인실 기다리다 주사 시기 놓치고 그래요."
"걔는 돈버는 지 남편이 있잖아."
"명주 오빠는 돈 안 벌어요? 왜 아들만 걱정이 되세요. 명주는 애도 둘이예요."
"무슨 얘길 들었는 지 모르지만 내가 명의만 아들로 한 거야. 명주가 상관할 게 아니야."
"그럼 공동명의로 해주세요. 무슨 얘기인 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집을 해주신 건가보네요."
"상관말아."
노파는 돌아누워 자는 척을 한다.
"친구가 시들어가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
"부탁드려요. 간병이라도 부담시키지 마세요."
당연히 노파는 꿈쩍도 안 한다. 안 듣는 그녀의 침묵에 내 귀가 먹먹했다.
지금도 귀가 먹먹하다. 명주가 죽었기 때문이다. 살던대로 갔다.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둥, 암이 진행이 빨랐다는 둥, 아직 젊다는 둥, 장례식장에서 두런두런 오가는 소리 가운데 명주의 영정사진이 있었다. 대체 언제적 사진일까. 명주는 직장에서 처음 만났던 그 젊고 싱싱한 얼굴로 까만 프레임 안에서 미소짓고 있다. 명주답게 조금 부끄러워하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명주에게서 의기양양하거나 마냥 밝은 모습을 한번도 느낀 적이 없구나. 고개를 떨구자 내 시야에 서 있는 유족들이 들어왔다. 은발을 쓴 노파가 날 보더니 스르르 미끄러지듯 피해 걸어나가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들자 눈매가 명주를 꼭 닮은 청년이 팔에 상장을 한 몸을 굽혀 내게 인사를 한다.
"친구분이시죠? 저, 아버지가 충격을 받으셔서 제가......"
"그래, 그래요."
나는 인사한 후 유족이 안내해주는대로 장례식장 한켠에 자리를 잡아 육개장을 대접받았지만 수저를 들지 못했다. 구석에서 명주의 남편이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는 소리에 속이 다글다글해서 눈물도 흘리고 싶지 않았다. 명주는 살아있을 때 남편이 자기가 병원가면 라면만 먹는다면서 속상해 했다. 아픈 사람이 식구들 밥까지 신경써줘야 하냐고 내가 힐난하자, 착하게 자란 명주는 말했다.
"밥이랑 국이랑 다 해놔도 데워먹질 않아. 정말 속상해."
속상해.
너무 속상해서 잊고 싶다.
널 생각하면 네가 빨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