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by 김인

아이들 다 자라 나가면 저는 오십대 중반이 된다. 그때까지 돈은 조금씩 모으고 여행책은 좀더 열심히 읽어두었다가 우리나라 여기저기 발닿는 대로 여행할 계획이다. 나이가 들며 체력은 서서히 내려가지만 안목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오십대면 천천히 무언가를 즐기기에 좋은 나이라고 들었다. 아예 늙어 시야가 흐려지기 전에 충분히 익은 눈으로 이 나라 사계절과 고졸한 유적지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음미하고 싶다.


첫 여행지는 벌써 정해 두었다. 전라도, 광주 그곳부터.

이십대 초 동생과 함께 남도 여행을 했었다. 군산에 사는 친구네에 놀러갔다가 충동적으로 시작한 여행이라 여벌옷은 커녕 노자부터 빠듯했지만 우리는 청춘이 아니라 전라도가 좋아서 행복했다. 그때 몸으로 겪은 전라도의 인심과 정취, 녹색 융을 깔아둔 듯 볕을 받아 펼쳐진 논을 바라보던 기억은 삼십년이 다 되도록 서울내기인 내게 고향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린 여자 둘이 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도움이 넘쳤다. 어느 식당에서나 제일 싼 음식을 먹었지만 아주머니들은 ‘우리도 곧 밥때라 하는 김에’하시며 따끈한 계란부침이나 화려한 고명 얹은 코다리찜을 나눠주셨고, 숙소는 늘 밥을 먹으며 자연스레 정해졌다. ‘동네 아는 거기’로 ‘아 싸게싸게’ 주선해 주셨다. 인심도 음식 양념도 가득한 전라도. 그런데 전라도를 생각하면 우선 떠오르는 기억은 그 분, 둘째집 사장님이다.


“정말 두 처니(처녀)가 다니능겨? 나쁜 놈덜이 많은데.”

사장님은 고추절임과 계란말이를 슬쩍 더 놓아주시며 동생과 나를 보았다.

“그럴까요, 설마.”

“이상허다 싶으면 우리 가게로 뛰어와. 나 밤잠두 없구 앵이, 둘째집이라구, 우리집 모르는 사람 읎어.”

“둘째집이요?”

“울 둘째가 유명인사여.”

“그래요?”

“나라 위해 일했어.” 사장님 시선을 따라 식당 벽 한켠을 보니 ‘000열사에게’라 적힌 사인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김대중’ 서명 옆 작은 국화 장식.

“멋진 아드님이시네요……”

“그럼그럼! 내가 우리 둘째 땜에 산당께니.”


몇년 전 그 사장님을 텔레비전에서 뵈었다. 민주화 운동하다 숨진 청년들을 인형으로 본떠 기리며 추모하는 행사였는데, 그분이 계셨다. 둘째 아드님을 생각하시는지 뿌듯하기도 먹먹하기도 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매끈한 계란처럼 마알간 외피로 피부를 잡은 한 인형의 청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계셨다. 취재진이 무어라 말을 걸었지만 끄덕끄덕 고개만 주억이며 웃으며 우셨다.


반가워서, 텔레비전 너머 있는 나도 웃다 울 수 밖에 없었다.

전라도, 민주화의 성지. 고마운 분들이 사는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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