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 사장님

by 김인

세시가 되어가는 새벽이었다. 허옇게 굳은 삼겹살 지방이 소주잔에 떨어져 기름막이 번졌다.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 되어, 오랜만에 고깃집에서 회식한 날이었다. 과장님이 고른 식당은 작고 아늑한 곳이었다. 전직 임원이 하는 곳이라 소개를 들어서 친분으로 팔아주는 거겠지,하고 가게 수준에 대해선 기대를 안했는데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문지방부터 환대받는 기분이 들었다. 하얀 부직포 모자 아래 은발이 보이는 늙수그레한 남자 사장님은 술고래 과장을 향해 애교있는 목례를, 회식 스트레스를 앞둔 우리에게는 정중한 존대말을 쓰며 맨 안쪽 자리로 안내해주고는 바로 사라졌다. 괜찮은 식당이었다. 앉자마자 따끈하고 청결한 손수건이 접시에 담겨 왔다. 고기는 두툼했고 철판은 물론 가위와 집게, 젓가락 모두 반짝반짝 잘 닦여 마른 상태였다. 매캐한 김치를 찹쌀이 절반같은 따끈한 밥 위에 싸 먹기만 해도 맛있었다. 바닥에도 찐찐한 고기 기름이 배어 있고 공기에서도 누린내가 느껴지는 체념스러운 식당들과 비교가 되는, 누군가 종일 노동해 일구는 야무진 소우주였다. 사장이 쓴 하얀 부직포 모자는 작은 식당 곳곳을 조용히 그리고 부지런히 오갔다. 그는 손님이 나가기 무섭게 젖은 행주와 마른 행주를 들고 가 다른 테이블에 등을 보인 자세로 난잡해진 자리를 몸으로 가리고는 말끔히 정리해 냈다. 두툼하고 마디가 굵은 검은 손이 새하얀 행주를 감아쥐고 와서 옆 테이블에 남은 잡다한 얼룩을 한참 이리저리 문질러 닦아내는 모습을 봤다. 임원들이 그렇듯 꼼꼼한 성격이겠지 넘겨 짚으면서도, 슬쩍 훔쳐본 그의 표정이 숙연해서 호기심이 돋았다.


해서 과장과 대리의 술 취한 척 내뱉는 허세와 장광설을 참아주고 술에 기댄 피로담을 들은 후에도, 엎드려 곯아떨어진 동료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고깃집 사장님과 말을 텄다.

“과장님께서 여기 오자고 하셨어요. 보통 예전 상사를 피하는데, 좋은 상무님이셨나봐요.”

내가 아첨으로 시작하자 그분은 넙적한 얼굴로 피식 웃으며 “위엔 잘 못 보였는 지 일년만에 짤려서 이렇네요.” 하셨다.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해 웃어넘기는 관록이 느껴졌다. 지금 떠올려도 예외적인 남성이었다. 대개 그 연배의, 더구나 전직 임원들은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자기 얘기만 들어달라고 하기 일쑤다. 이분 역시, 열심히 올라갔는데 내려오니 허무하다는 식의 상처핥기로 빠질 수 있겠다고 나는 진작 각오했지만 얘기는 대화로 흘렀다. 우리는 월급쟁이 생활에 대해 무난한 몇마디를 나누었고 사장님은 내 안부를 물었다.

“이 시간에 제 아이는 자고 있겠죠.”

그는 가느다란 한숨을 쉬며 받아만 두라고 내 잔에 술을 조금 따라주고는 먼저 한 잔 마셨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사는 게 재미있나? 재미있어요?”
“네. 괜찮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벽 어딘가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뭐가 재미있는가요?” 그 시선이 날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걸친 꺼풀, 불판 기름이 튄 하얀 셔츠와 남색 정장은 진부하지만 편하게 보였을까. 그의 깨끗한 모자를 보며 솔직한 호감을 담아 대꾸했다.

“오늘도 의외로 좋네요. 이꼴이라고 하시면서도 고기는 뭐부터 구워야 맛있다든가, 결을 어떻게 잘라야 한다든가 하시는 말씀도 재미있었습니다. 고기를 좋아해서 가게를 하시게 되셨는가봐요.”

“나는 시를 쓰고 싶었는데.” 그의 시선이 다시 허공을 향한다.

“네.”

“그런데 이 나이가 되니까 인정하게 돼요. 솔직히 나는 시인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되지도 못했겠지만.

그냥 다른 돌을 집어보고 싶었던 거겠죠, 반항하고 싶었달까. 자유를 실감하고 싶었을까요.”

“정말 원하신 건 뭐였는데요?”

“선택했던 걸 사실 원했지요.” 그의 고개가 아래를 향한다. 뒤잇기를 하는 음성은 드문드문 이어졌다.

“이름 알려진 적당한 직장에 가서, 남들에게 무시 안받고, 예쁘장한 여자랑 결혼해서 애들 둘 낳고. 부모님한테 돈 얼마씩 보내고…그런 걸 원했지요.”

“그럼 다 이루셨네요.”

“예에. 그래서 불만은 없어요.”

“네.”

“그런데 다른 걸 원했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죠.” 그가 열린 가게 문 쪽을 바라본다. 오소소한 새벽 바람이 들이쳐 엎드려 자는 사람들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이 보인다.

“쳇바퀴 같은 겁니다. 뭘 해야 하고, 그것도 무지하게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해내야 하고. 지쳐 쉬고 싶다가도, 편해지면 엇나가고 나쁜 습관으로 돌아가고, 중하지도 않은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끝이 없고……. 정신 차리면 몇년씩 지나 있는데, 같은 질문만 반복하죠. 이게 내가 원한 걸까, 아니구나 내가 선택했구나.”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일어나 취객들이 부려댄 테이블을 치우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구비구비 가락을 넘어가면서 자신과 별로 얘기해본 적 없어보이는, 한 사람의 목젖이 떨렸다. 내 목도 떨렸을까.


집에 도착하니 보라색 하늘 가장자리로 진홍색 선이 깃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하루가 우르르 시작하기 전 저는 지난 새벽을 기억하고 싶었다. 런닝셔츠 바람으로 아이를 안고 잠든 나의 가족을, 오래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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