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불이 활활 타다가 연기조차 감출즈음 소먹이 여물이 삶긴다. 볏짚과 약간의 콩깍지와 여름내 야산에서 베어다 말린 건초가 들어가서 구수했다. 그렇게 끓여낸 소여 물을 퍼내고 나면 아직 뜨거운 솥에다 다시 새물을 부어서 데워지면 온 가족이 차례로 씻었다. 그 뒤 아버지와 엄마와 동생들과 같이 깨끗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아랫마을 공소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럴 때면 늘 뛸 듯이 기쁘고 즐거웠다.
그때 우리 가족에게 사철 외출복이 한벌씩 있었다. 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엄마는 거의 사철 내내 초록한복을 입고 성당을 가셨다. 평상시에는 간편한 차림으로 나서기도 했지만 한 달에 한번 신부님께서 오시는 날은 늘 초록한복 차림이었다. 그럴 때면 평소보다 엄마가 훨씬 더 고와 보여서신이 났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늘 보던 녹음 우거진 신골소녀로 자라서일까? 나는 초록색을 좋아했다.
이른 봄 겨우내 잠을 잔 아지랑이가 기지개를 켜고 그사이를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없던 힘이 생기는 듯 의욕이 일곤 했다. 씀바귀를 캐서 장에 내다 판 뒤 조기나 고등어 등의 생선을 바꾸어오시는 할머니를 따라 채 다 녹지 않은 밭으로 따라다니곤 했다. 어쩌다 산명 나게 한바탕 호미질해서 가지고 간 바구니를 채운 때는 할머니의 외출 발걸음도 가벼웠다.
보자기 가득 나물을 싸서 장에 갔다가 돌아올 땐 가끔 예쁜 신발과 옷도 보따리 속에서 나왔다. 그런 기대감이 생기긴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겨울보다는 봄이 좋았고 봄보다는 여름이 더 좋았다.
한마디로 초록초록한 들판과 산을 보면 힘이 났었다. 내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는 초록세상에 던져진 토끼 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