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주일미사를 지역본당 합동으로 주교님을 모시고 군 실내 체육관에서 드렸다. 이후 성당으로 곧장 이동했다. 기도회간부들 월례모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월례회뒤에 다 같이 식사를 했다. 그런데 살짝 배고픈 상태에서 허겁지급 먹어서일까? 이내 식곤증이 와서 차를 몰 자신이 없었다. 좀 불편한 다리와 긴장감을 풀 겸 성당뒤편에 있는 도서관엘 들어왔고 책을 펼쳐 놓은 채 잠이 들었다.
어제는 초가을 바람맞으며 미리내성지 뒷산을 혼자 걸었다. 대부분 성당어르신들로 이루어진 산악회에 슬쩍 끼어들어서 간 것이었다. 사실 어디 가는지도 모른 채 있다가 출발 전에야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아볼만치 준비성이 없었다. 하여 처음에는 동행한 분들과 산마루까지 도착해서 점식을 먹고는 다른 분들께서 하산 준비할 때에 혼자서 정상을 가보겠다며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산아래로 우리나라 최초사제인 성김대건안드레아 묘소와 작은 경당과 103위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큰 성당과 그 주변이 온통 성지로 개발되어 내려다 보였다.
믿지 못할 촉과 감각이 살아난걸가? 아니면 낯선 땅을 딛고 미지의 세계로 향하면서도 믿음의 끈 하나에다 모든 것을 맡기는 그 느낌을 오래간만에 느끼고 싶었던 것인가?
혹은 십수 년의 바보스럽도록 억지 같았던 치유에의 기다림 또는 기적 같은 특별한 체험을 기대한 걸까? 최근 시도한 맨발 걷기 산행의 코스 중 하나로 택하기로 차 안에서 결정해 버린 난 그 생각의 실행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맨발 산행은 능선 대부분을 걸었으며 비록 정상아래에서 돌아왔고 잘만 찾아가면 성지까지도 갈 수 있었건만 그 촉을 접고 왔던 길로 돌아서긴 했지만 말이다.
차량 출발 시간은 정해져 있고 성지도 한 바퀴 돌아봐야 하는데 나 혼자 낯선 산에서 맨발 투혼 중이었다. 첫출발 때는 여유롭게 도토리도 주었건만 다시 돌아서 올 때는 어쩌다 나타나는 길표지판만 믿기는 어쩐지 두려웠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다. 양손에든 신발이 신경 쓰이기도 해도 그냥 걸었다. 그 옛날 신앙선조님들은 이 같은 경험을 수시로 하면서도 끝내 목숨까지 바치며 지킨 신앙이 아니던가? 하는 간접경험의 감정이입이 되니 나도 몰래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잘 가고 있나? 성당 어르신들께서 걱정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자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당연 인터넷 검색도 안되어서 돌아선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점심 식사 하던 곳까지 도착 한 다음부터는 낙엽과 도토리가 깔린 길을 미끄럼 타듯 내려왔다.
성당 어르신분들께선 한동안 조바심치고 애태우셨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고맙고 죄송하단 표현을 간단히 드린 뒤에 남은 시간을 알뜰히 다니며 보고 기도하고 걸었다.
등산과 성지순례가 동시에 이뤄진 경험을 하루에 다 한 것이었다. 덕분에 버스를 타고 내려올 때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그 행복한 추억과 감동과 뿌듯함을 간직한 채 주일을 맞은 오늘 또한 특별한 날이 되고 보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래서일까? 책을 앞에 두고 곤히 자버린 도서관에서의 지금 이 순간 또한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잡념 없이 쉰 일요일 오후가 참 한가롭게 느껴지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글로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