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살다 보면 2

가을울 줍거나 따기도 하고

by 하리

소매길이가 달라졌다. 모자 색상과 햇살마저 어느샌가 새초롬하게 마음을 간질인다.


여름내 물오르던 잎들이 시들시들하자 호미와 삽이 동원되어 가족들은 고구마를 캤다.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뒷밭둑 밤나무를 멀찍이서 쳐다본 지 몇 번 되지 않아 밤 도둑이 먼저 알고 주워가서 빈 밤송이만 수북하다고 밥상머리서 남편이 투덜거렸다.

이른 새벽부터 젖소 착유 작업에다 낮에는 수숫대 베느라 바쁜 가을이었다. 게다가 벼논 돌보다가 밤나무 아래는 갈 시간도 없는데 두런대는 사람소리가들리니 신경이 곤두서서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한 달가량을 추석추석 노래하시던 어머님 뜻 맞추느라 직접 송편을 빚고 큰 가마솥에 불을 지펴서 사흘에 걸쳐 곰국을 우려내고 나니 살짝 몸살이 났었다. 그 몸살 다 풀리도록 일주일 가량 조심하는 중에 벌써 손 빠른 사람들이 풀숲을 뒤져가며 떨어지는 족족 밤들을 주워갔다는 것이다.

한창 힘없고 아플 때에야 누가 밤을 줍든 장대로 따가든 내 소관이 아니어서 모르쇠 했었다. 그렇게 지내기를 어언 십여 년인데 근래 쬠씩 촐싹대는 모양새에 밤정도는 줍겠거니 하고 던진 남편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다음날 아침 짧은 기도를 드린 뒤 작업복 차림으로 장화를 신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막대기도 하나 줏어들고 집뒤 밭둑으로 깄다.

멀리서 보기엔 아직 푸르렀는데 가까이 가보니 빈밤송이가 수북했다. 그나마 나무에 남은 송이들도 죄다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용기 내지 않았음 제사 쓸 밤조차 사야 할 것 같아 미끄러지며 밭둑을 오르락내리락하다 간신히 한 됫박은 됨직했다.

물론 그 사이에 팔다리에 생채기가 나고 옷에는 온갖 씨가 붙어서 떼느라 혼이 났다.

한 시간쯤 헤매어서 주운 밤을 보니 시급은 되겠다 싶었다. 문제는 이후 종일 팔다리가 아프고 다음날 자고나도 온몸이 뻐근했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고 볼그레한 밤이 자꾸 떠올라 다음날 또다시 작업복을 입었다. 사흘을 내리 그러고 나니 몸은 비록 불편하나 밤을 볼 적마다 마음은 뿌듯했다.

하지만 가을이 어찌 캐고 줍는 거로 끝이 나는가? 걸어야 한다고 성당단체 나들이에 가자 해서 따라나서고 보니 그 또한 마음만치 몸은 개운치 않아 마루에서 쉬었다.

불쑥 누런 흙이 속살 드러낸 고구마 밭을 걸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냥 걷는 것보다 이왕이면 그 옆에서 씨앗을 익히느라 부산한 들깨가 생각나서 누렇게 물든 잎이라도 좀 따서 삭히면 김장 때 남는 양념으로 버물려서 깻잎김치를 담아보면 어떨까 욕심이 났다.

막상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고 있을 때라 들깨도 말라가고 있어 곧 베야할 것 같다. 다행히 몇 잎 따고 보니 봉지하나는 채울 것 같다. 지난여름밤 달 보며 옮겨 심어주었다고 가을이 되니 잎으로 알맹이로 제 몫을 한다.


인생의 가을로 접어드는 난 무엇을 품어서 익히고 있는 걸까?

그저 맨발로 걸으며 지금을 감사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