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와 치유사이 2

병원엔 왜 가?

by 하리

의사의 진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면서 치료를 시작 하진 못했다. 어떻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나 스스로 수용할 시간이 필요했다.


"좋습니다. 날 받읍시다. 뭐 초기는 아닌 거 같지만 계란형으로 모양이 뚜렷하니 하나 제거해도 사는데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은 백번 옳았다. 초음파나 시티나 펫시티를 통틀어 면밀 주도하게 보았으니 말이다. 나 또한 그 사이 병원 서너 곳을 갔는데 결과는 한결같았다. 만약 의사의 진단대로 실행한다면 당장에 춥고 힘없고 살 빠지고 있는 데다가

못 먹고 못 자고 못 싸는 것도 치료되느냐? 는 것이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아프고 밉고 슬프고 괴로운 마음은 수술 한 번으로 가능하냐고 내 마음속 깊은 의문과 분노는 나를 온통 흔들고도 잠까지 침범해서 꿈속에서조차도 시달리고 있었다.

번번 실망하면서도 나의 병원행이 지속된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나 음식과 마음가짐의 노력이 영향을 미치고 있나?'며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그런 의도로 혹시나 하며 병원을 갔다. 하지만 번번 불안과 두려움과 마주칠 뿐이었어도 두세 달 만에 한 번씩 재확인하곤 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이런저런 처방을 받는 것도 아니요, 수술을 결심할 것도 아니면서 병원은 뭐 하러 가서 돈 쓰고 돌아와서는 신경질 부리느냐고 화를 냈다.

비슷한 결과를 반복하면서도 수년간 병원행은 이어졌다. 어떨 때는 신장수치가 조금만 좋아져도 뛸 듯이 기뻤다가 어떨 때는 컨디션을 조절 못해 긴장하거나 속상한 일을 이내 떨치지 못해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싶을 때는 영락없이 종양덩이 자체가 커져있었다.

.


한마디로 불안과 두려운 가운데도 위안이나 희망이란 동아줄을 찼듯이 나름 나만의 도움닫기가 어디까지 볼 수 있나 용쓰듯 하는 널뛰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