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이년 전 그날의 난 두렵고 불안하고 화 투성이었다. 수저로 음식을 넘기기는 했지만 위와 장에서 받아주지 않고 이내 쏟아냈다.
날마다 아침에 몸무게를 재면 전날보다 빠졌었다.
시티상 약 6센티 정도의 종양이 계란모양으로 경계가 뚜렷했다.
그날 나의 이전 진찰 기록물을 찬찬히 보신 후 담당의사의 총평이었다.
"네 좋습니다. 부분절제 수술 가능합니다. 수술 날짜만 잡으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가장 빠른 달이 다음 달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왔으니 같은 검사를 자주 하기보다 수술 전 그때 하면 되겠습니다."
지역에서 몇 군데 병원을 알아본 뒤 최종적으로 올라온 서울에서조차 암이라는 확신이었다. 혹시나 하며 기대한 것이 실망으로 보탠 무게감에 가슴은 더 쿵 내려앉았다. 지역의사와 다른 점은 좀 더 친절한 말과 부분절제 가능이었다.
이미 각오한 일인데도 가슴은 연거푸 난도질당한 듯 쓰리고 아팠다.
상담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니 간호사와 면담이 이어졌다. 한 달 여 뒤로 잡힌 수술준비물과 금기사항 등을 적은 안내문을 받은 뒤에 내용 설명을 듣고 터덜터덜 병원문을 나섰다.
혹시나 했던 기대도 무너지고 비쩍 마른 몸이 더 야위어 가는 중인데 정말 수술하면 살 수 있을까? 산다면 얼마나 살까? 남은 날들을 과연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오만가지 갈등으로 짓눌린 채 병원마당에 나와서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앞자리가 서울인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저 여기 00 병원 진료과인데요. 방금 저희 과 담당교수님과 상담하고 나가신 000 환자분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
그 전화의 내용은 이랬다.
막 병실문을 나선 그 뒤로 나보다 상태가 더 심각한 환자가 들어왔는데 수술을 당장이라도 해야 할만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예약해 놓은 그날 이전에는 조절이 어렵고 해서 그보다 덜 심각한 내게 수술 날짜를 양보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몸 상태야 어떻든지 신장하나를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던 지역병원보다는 부분절제가능이란 진단을 받은 지 채 삼십 분도 안 된 때였다. 정밀검사조차 수술날무렵 다시 올라왔을 때 하기로 했으니 금전적인 낭비는 없었지만 순간 잠깐이나마 생각을 해야 했다. 어쩌면 이것이 하느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서두르지 마라'는 성서말씀에 일말의 기대를 걸며 힘을 싣는 선택 일 수도 있었다.
" 네 , 그렇게 하세요. 전 그럼 다음 달에 와서 다시 날 받겠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린 지 어느새 열두 해가 지났다. 난 지금 그때보다는 일반 컨디션이 좋아서 밥을 잘 먹고 잠도 잘 자며 쉬 피곤하지도 않은 데다 몸무게도 늘었다. 단지 수시로 재어보는 종양 사이즈가 처음 그때보다는 거의 배로 커져 있는 상태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대기시간은 긴장된다. 이전에는 혹 조금이라도 사이즈에 변화만 있어도 희비가 엇갈렸다. 번번 어떻게 관리하며 지냈는지에 따라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마치 시소 타듯 했다. 이번에야 말로 더 나빠지지만 않았음 성공이야 할 각오로 왔었다. 하지만 긴장되는 건 매 한 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