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노래 들얘기 6

벚꽃필 무렵

by 하리

밤낮 기온차가 심하다지만 3월도 중순이고 보니 벚나무에도 꽃눈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난생처음 알게 된 벚나무는 성당 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번번 눈높이에서 마주치는 건 거무티티한 둥치라 마치 집 앞 감나무나 진배없었다. 다만 키가

커 보이고 잔 가지들이 많았다.

우리 집 가족은 평소에는 아랫마을 공소에서 예절을 바치다가 성탄이나 부활절이면 읍내 성당을 가곤 했다. 그럴 때면 그 나무를 마주치곤 했다. 어느 해 부활절이었다 성당골목 입구부터 코끝에 와닿는 향기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더니 눈부시게 구름처럼 뭉게뭉게 연분홍빛깔의 벚꽃이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껏 취하게 했던 그 꽃도 봄마다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부활절 시기가 다르니 어떤 해는 피다가 얼어서 못 보고 어떤 해는 벌써 지고 없어진 자리에 새잎이 돋곤 했다.

그래도 해가 거듭할수록 나무는 더 높이 더 넓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렇게 화사하게 꽃을 피운 모습을 몇 해쯤 본 뒤였다. 이다음에 나도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꽃을 피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몸이 약하고 내성적이라 남 앞에서 용기가 없어하고픈 말도 못 하면서 말이다.

가끔 무언가 결정해야 하거나 선택할 때 또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는 그 벚나무 앞에서의 나를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내곤 했다.


올해도 벚꽃은 시린 눈부심으로 피어날 것이다. 하나 이내 며칠 못 가서 지고 말 테지만 여름날은 잎마다 바람품고 가을 끝자락까지 그 잎들 붉게 매단 채 꽂진 자리마다 버찌까지 매단 채 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그런 벚나무의 삶을 닮고 싶다는 것 또한 멋모르던 때의 섣부른 기대였다.

해마다 더 성숙해지기도 어렵고 더구나 뜨거운 여름과 마무리까지 화려한 삶은 그만큼 아프고 힘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순간순간 마주치는 불편함 따위에 흔들릴 순 있어도 뿌리마저 뽑히게 두면 안될 것이다.


그래, 올올해도 벚나무 아래에 서면 감히 꽃처럼 피고 싶다며 욕심낼지 모른다. 동시에 누가 날 좀 말려줬으면 하고 주위를 둘러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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