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그 후 3

희망 동아줄

by 하리

인근지역 대학병원에서의 진단 후 나의 삶은 엄청난 파도를 감당하느라 휘청대었다.


"이제부터 성당에 일주일에 세 번씩 가라"

남편의 공적인? 특명이 떨어졌다,

얼마나 인내하며 기다린 뒤의 말이던가!

힘들다고 가정마저 깨고 싶었던 지난 어느 날에 본 성서말씀도 떠올라서 울고 또 울었다.

가진 것도 잘난 구석도 없는 데다 주변머리까지 없는데 건강마저 바닥을 기고 있는 형국이라 어디 가서 말로라도 위로받지 못해 가슴이 턱턱 막혔다. 그런 중에 어쩌다 들른 성당에서 속엣말을 하면서 울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속이 시원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지런히 가도 좋다고 하는데 암 검진 몇 번 받은 후유증에 시달리느라 주 3회는커녕 주일미사참례할 힘도 없었다.

그래도 결혼 후 무려 18년 만의 변화여서 어떻게든 성당을 가야 했다. 택시를 타고 오가거나 병원 오갈 때도 잠시 들렀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소원하든 기도에도 조금씩 더 마음을 모으기는 했다. 하지만 눈에 뵈는 현실은 쉬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고 검진 결과지를 들고 타 병원을 가도 결론은 같았다. 조속한 시일 내로 수술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도드리고 받은 성서말씀은

'서두르지 마라, 말씀으로 치유되리라.'였기에 정말 믿기는 어려웠으나 쉬 포기할 수 없는 정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처럼 느껴지니 난감했다.

"고마 가족들 속 그만 태우고 의사 말 들어라"

가족도 이웃분들도 심지어 성당 교우분들도 조심스레 권했다.

"요즈음 의술이 얼마나 좋은데 뭔 믿음이 그리 세다고 미련스레 고집 피우고 있느냐?

그러려면 눈에 안 보이는 데 가서 혼자 살든지 ᆢ"

하나뿐인 보험금에 대해 알아보니 세포진 검사를 해서 진단서를 받아야 지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게다가 집안경제가 휘청대는 때라 할인 없는 일반 요양원경비를 댈 여건이 못 되는 남편으로서는 그냥 의사말대로 한쪽 신장을 제거해서 진단비도 받고 요양도 하라는 것이었다.

며칠을 더 고민해보겠다고 한 병원 대신 성당만 기웃대며 인터넷으로 알아본 신장암의 예후는 수술뒤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당시의 나의 판단으로 신장암은 수술이 가장 최상의 방법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향후 재발하게 되면 할 수 있는 방법이 보통은 항암인데 신장암은 항암제가 잘 듣지 않아서 별 소용이 없다는 게 그때당시의 대부분 소견이었다. 그러다가 정말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면 종양을 달고 사는 생존율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데에 온 신경이 가는 것이었다.

그때 본 어떤 자료에서 재발 후의 생존율은 이십 프로 미만이라 했다.(*검색상ㅡ2012 년도 추정치)

그저 좀 피곤하고 힘없고 설사를 밥 먹는 횟수보다 더 많이 하고 괴롭더라도 수술 않고서도 3년은 살아가겠거니 했다. 그래서 또다시 수술 않기로 결심했다.

그 며칠 후 아침을 먹다가 남편으로부터 또 다른 말을 들었다

" 니 소원대로 자연으로 하는 요양인가 하는데 가봐라, 요양비는 줄게"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여서 미리 알아본 자연

치유의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쌌다.


신장암진단받은 후 2달 될 무렵

내 나이 마흔아홉의 4월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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