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그 후 4

무늬만 가출

by 하리

다녀오라고 한 전날과는 달리 남편은 아침을 먹다가 꼭 가야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무엇보다 마음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는 집을 나섰다.


자연치유의 집에서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암의 진행 때문에 일상상활이 어려운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 와 있다고 했다. 그분 들중에는 수술을 하고 오거나 수술을 거부당한 채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 생각하고 온 분들도 계셨다.

식사 시간이 되자 각자 통성명을 했다. 그리고 무슨 병명인지 병력은 얼마나 되었는지를 묻고 답했다, 대부분 먹는 밥의 양은 얼마 되지 않건만 입맛이 없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관계로 식사 시간이 길었다.

한쪽 벽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우선시하기를 권하며 식사 시간과 아침운동 하기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들의 시간표가 걸려 있었다. 일어나는 시각과 잠자는 시간, 식사 시간도 규칙적으로 바뀌어야 했다. 그 이외에는 자유시간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외부강사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잠긴 지 꽤 된 나로선 박수로써 힘께 되겠다 싶었다.

아침은 속이 편하게 죽종류와 찰밥 같은 부드러운 음식이었고 점심은 콩으로 만든 고기에다 유기농 쌈채소들과 매일 다른 특식의 푸짐한 뷔페 형식이었다. 저녁은 고구마나 옥수수 같이 요리하지 않아도 되는 탄수화물 종류와 통밀이나 쌀가루로 만든 면류였다. 비교적 종류가 좀 간단했다. 그런데도 소화가 잘 안 되어 힘들었다.

운동삼아 좀 걷고 나면 힘들다고 식은땀이 나면서 맥을 못 추었다. 몇 걸음 걷고 나면 어디든 주저앉아 쉬곤 하던 발걸음이 봄의 진행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갔다. 개울가에서 쉬어야 했던 발걸음이 개울 건너 언덕배기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돌아올 때쯤엔 종종 고사리나 산나물을 들고 오곤 했다.


그 와중에도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틈틈 아이들이 보고 싶고 남편도 궁금했다. 하지만 전화나 면회가 일절 없었다. 같은 방을 쓰는 어르신과 옆방 사람들은 가족들이 연신 찾아오거나 연락이 오는 것을 보니 더 서운했다. 내게 연락 오는 곳은 친구 몇 명과 친정 식구들 뿐이었다.

한마디로 혼자서 살아내야 할 독립심이 내겐 없었다. 마음정리가 필요하다고 집을 떠나 왔는데 혼자 있으면 가볍고 좋을 줄 알았는데 점점 더 초라해져 가고 있었다. 덩달아 입맛이 점점 줄어드니 몸무게도 빠졌다. 게다가 머리가 땅에 닿기만 해도 자던 밤잠마저 설치기 시작했다.

살아갈 이유와 살맛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집을 떠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도 규칙적인 식사를 곁들인 새활에다 다른 사람들의 간섭과 질타가 없는 나날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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