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마당까지 도착한 택시에서 내리면서 잠시 전 집과 논의 경계선즈음에 뭐가 보였다는 게 생각났다.
가방을 내려놓고 나니 평소에도 청소하기를 즐기지 않는 데다 오래된 피로감으로 늘 집은 엉망이었는데도 마음이 아팠다. 나 혼자 살겠다고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아이들은 더 힘들게 지낸 표시가 역력했으니 말이다.
몇 달 만에 진지하게 아이들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다. 어떤 경우가 생겨도 각자 할 일은 알아서 해야 한다고 말이다.
제일 예민한 아들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해야 할 것이 무언지 깨달았노라고 나중에 말했다. 큰딸은 훌쩍이며 울기만 했고 막내는 자기가 할 건 알아서 할 테니 엄마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우리 집 입구에 탑 쌓았다?
몇 번이나 무너졌는데 아빠가 한여름에도 포기 않고 쌓다 보니까 이제 바람 불어도 끄떡없어. 내일 한번 봐"
그랬다. 남편은 내가 집을 떠나서 지내는 것만도 화날 일이고 불편해서 나만 보면 소리치고 있는 게 다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득부득 우기니 하는 수없이 수술비 대신 요양비 몇 달분 준 거로 자신이 할 일은 했다는 마음이었던지 다섯 달 동안에 남편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내가 거는 전화도 용건만 듣고는 이내 끊곤 했었다. 그러다가 딱 한번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긴 했다. 귀한 전화라 반가이 받았건만 단식으로 치유하는 곳을 소개받았는데 가 보겠느냐고 했다. 이론 인즉 적게 먹으면 암세포도 먹을 거 없어서 죽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미 잘 못 먹어서 힘도 없는 내겐 최악이라고 거부했더니 냅다 소리치고는 끊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죽을 것 같은 불안감에 흔들리면서 병원 대신 다른 길에서 방법을 찾겠다는 나나 단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결론짓고 말았음 하던 남편이나 피장파장이었던 것.)
내가 듣고픈 말들은
'어이 지내느냐? 밥은 먹느냐?'였다. 그런데 평소에 집안 행사 때도 나름의 노력을했건만 번번 마음에 안 든다느니. 잘못한다느니 타박이 끝이 없었으니 그깟 안부 전화 따위는 안중에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계속 기다렸었다.
그런 무심한 남편이 쌓았다는 마당가의 탑은 한마디로 아이러니였다. 겉으로 말하고 행동한 것보다 속마음은 달랐던 것인가?
돌멩이 하나하나 쌓으면서 본인의 불안을 버린 건지,
병이 들어서 집을 떠나 있는 내가 걱정되어서인지에 대해 지금껏 물어보지 못했다.
논밭에서 뒹굴던 작은 돌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탑과 두 마리의 거북이가 되어 울 집마당을 지키고 있는 그 이유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