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그 후 8

곧장 집으로

by 하리

암치유 교육장에서 인상적인 모습은 단연코 기도에 제대로 맛을 들여서 비록 투병 중일지라도 밝은 얼굴과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루일과가 평온하다는 분들이었다.

나는 갈 길이 멀었다는 걸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느꼈다. 그들의 평한 모습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앞에만 가면 위로와 힘을 얻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주눅이 들었다.

입 다물고 있으면 그나마 존재감 없이도 기본은 하는데 입만 열면 밑천이 다 드러났다. 내가 그리 말 많은 사람이었나 싶어 스스로 놀랄 정도로 열변을 토하곤 했었다.

한방 쓰던 자매님은 병원을 갔더니 예후가 좋아서 항암대신 직장복귀준비하려고 먼저 나갈 정도였다. 모두들 그 자매를 부러워했다.

같은 차수에 당첨되어 근 한 달 넘게 함께 지냈지만 퇴소할 때는 갈길이 달랐다. 같은 방자매처럼 기적같이 회복되는가 하면 몇 분은 하늘나라로 혹은 상태가 심각해져서 병원으로 간분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유료 요양원을 찾아가거나 자연과 더 가까운 곳을 원했다. 그중에는 보험을 여럿 들어두어서 그때만 해도 요양원 경비를 빼고도 상당금액이 여윳돈으로 남는 사람을 칭하기를 암연금자 또는 암대표라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준비나 대책도 없는 애매한 상태여서 안타까움과 염려기도를 듬뿍 받으며 정한 날에 퇴소했다.


침묵 속에서 이뤄진 수녀원의 피정은 내겐 다행스럽고 고마운 기회였다.

누군가 내게 큰 가방을 왜 들고 왔는지 묻지도 않고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박 삼 일간의 피정 중에 가장 큰 변화는 잠자기 전 지나온 삶의 반성을 하는 기도시간이 있었다. 또한 성모님 그림 카드를 성서 속에 꽂아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그 장에서 첫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묵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이어 마주친 성서말씀은''곧장 집으로''였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나의 속마음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반기는 이라곤 겁먹은 얼굴로 걱정이 가득한 아이들 뿐인데 마음이 편치 않아서 더 나빠지면 어쩌나 싶어 찹찹했다.

그런데도 병원 처방을 따르지 않아 화가 잔뜩 나있는 가족품으로 돌아갔다.

진단 후 집을 나서서 헤맨 지 꼭 다섯 달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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