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놀이 2

'만약에?'

by 하리

아들의 한 마디에 나만의 고요한 마음의 방이 온통 흔들리고 있다. 해를 넘기면서 자다가 깨기를 자주 했다. 게다가 걸핏하면 방에 불을 켜 놓은 채 자는 것도 다반사이긴 했다. 그렇게 삐꺽 대다 안정을 겨우 찾아가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온몸 세포를 흔드는 것으로 부족해서 남편과 친정엄마와 친구에게까지 전파되었다.


내 머릿속에선 나도 몰래 이미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며느리를 맞아들인다는 것은 곧 손주들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일 테지, 어쩌면 몇 년을 지나서야 겨우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 미래에 다가올 새로운 생명체는 어떤 의미로 와서 내 세계를 흔들까? 지금 그저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있고 그 여자친구와 미래를 함께 하고 싶어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에 밤잠을 설치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 새로운 생명체는 제 아비와 어미의 혼을 쏙 빼놓는 것도 모자라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테지?

또한 우주 어느 곳에서 툭 떨어져 온 어린 왕자처럼 도도하면서도 호기심이 많겠지?. 사소한 일에도 감동하여 한동안 중심 없이 휘둘리는 나를 포함한 어정쩡한 어른들을 죄다 숨죽이게 할 수도 있겠지?

김칫국을 먼저 마시는 걸까? 병아리 한 마리 사다 놓고 큰 소로 키워서 팔 생각을 했던 철 모르던 때처럼 갑자기 온통 내 생각은 '만약에?' 란 단어에 꽂혀서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만약에 정말 아들이 이참에 결혼이란 큰 행사를 치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말을 던진 거라면? 엄마인 나는 무얼 우선으로 해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기와집 몇 채를 지었다가 부수는 고민이 며칠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고 보면 어떤 아가씨기에 내 며느리가 될 생각을 하는 것일까? 하는 기대감보다 더 앞선 미래의 일이다. 그런데도 아직 잉태될 기미도 없는 먼 미래의 손주들 생각이 먼저 난 것은 벌써부터 친구들이 하는 손주자랑을 듣고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가슴 깊이 북받쳐 오르는 기대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도 몰래 조언을 구한다며 속마음이 말로 튀어나와서는 남편과 친정 엄마와 친구에게 온통 소문을 내고야 말았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으나 만 5년이 되니 아이가 셋이었던 지난날의 내 젊을 때를 생각하면 외려 느긋해야 하는데 지금껏 잠자고만 있던 숨은 마음이 뛰기 시작하니 이를 어떻게 감추느냐 말이다.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벽을 보거나 심지어 달력을 볼 때도 떠올랐다. 그렇게 자꾸 생각만 하다가는 병이 도질 것만 같아 아들에게 문자를 했다.

'일단, 아가씨 얼굴이나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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