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의 연속

3. 파수꾼, 서다

by 하리

방학이라도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집을 나섰던 막내였다. 그런데 지난여름엔 처음 몇 주간 실습을 한 것 이외엔 어쩌다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 말고는 나무늘보처럼 종일 방바닥을 지고 있.


결혼 전 신부님 앞에서 예비부부교육을 받을 때였다. 자녀는 몇 명 낳을 거냐는 질문에 ‘셋이요’했다. 그나마 ‘다섯은 되어야’ 하던 남편보다 엄청 줄인 것이었다. 내 나이 서른하나에 한 결혼이었다. 늘 골골한 모습만 보였기에 친정 쪽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애 하나라도 낳아 기르면 다행이지’ 했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막내가 처음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언니와 오빠가 어린이 집으로 갈 때면 ‘나도 따라갈래, 따라갈래’라며 등 뒤에서 소리쳤다. 하는 수 없어 이듬해에는 기저귀 가방과 함께 보냈다.

학교를 들어간 막내는 하루 일과가 점점 바빠졌다.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나 대신 집에 오면 아빠와 같이 목장에서 주로 지냈다. 자연히 소와 친해져서 소등을 타거나 송아지 우유를 주면서 소들과 가까이했다.

막내는 어릴 때의 나처럼 덩치가 작고 말이 적었다. 그렇지만 어쩌다 하는 한 마디는 위력이 셌다. 남편은 유독 밥상머리에서 반찬투정을 하거나 결혼 이전에 실패한 나의 과거사를 심심풀이 땅콩 삼아 내뱉곤 했다. 마치 녹음기 틀어놓듯 하던 그간의 습관을 바꾸는데 막내가 큰 역할을 했다.

막내가 아빠에게 건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나는 듯했다. 몇 주간 같은 상황에서 ‘아빠, 오늘은 반찬이 맛있지 않아?’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맛있기는’이었다’ 어느 날 제 아빠의 수저를 휙 낚아채며 소리쳤다.

‘아빠는 번번이 엄마가 정성 들여 해준 음식이 맛없데! 먹기는 다 먹으면서 말이야. 그렇게 맛이 없으면 아빠가 해 먹어!’

남편은 멈칫했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밥상에서의 남편의 나쁜 말버릇은 차차 고쳐졌다.

그런 얼마쯤 뒤였다. “엄마, 나는 머리가 나쁜가 봐, 공부도 못하고” 나는 막내를 격려했다. “걱정 마, 넌 짱구잖아, 열심히 하면 돼,” 종종 그 말을 해주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다잡아서 물었다.

‘진짜 맞나! 엄마 말?, 짱구는 머리가 좋다는 말말이야’

‘그럼 봐라, 네 앞머리가 언니나 오빠보다 이마가 툭 나와 있잖아. 거기 뭐가 들었겠어? 밥그릇 큰 거랑 같지. 다른 사람보다 더 넣어도 된다는 거지’ 거기 에 하나 더 보탰다.

‘공부도 송아지 우유 주듯이 날마다 하면 돼. 송아지가 우유 먹고 크는데 주다가 안 주면 배고프다고 울잖아, 공부도 자꾸 하다 보면 성적이 올라가는 거지’

그제야 막내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그럼 한번 해 보지 뭐’

그때부터 책상 앞에 엉덩이 붙이는 연습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강아지 밥이랑 송아지 우유를 준 뒤 저녁밥을 먹고는 책상에 앉아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놓칠까 봐 일주일 마무리는 주말에 또 했다.

그러구러 막내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때쯤 나는 암 선고를 받고 몸도 마음도 힘이 빠진 파수꾼 기러기 같아 아이들의 좌표가 되기는 버거웠다. 그런데도 막내는 자기가 정한 시간에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중간고사에서 조금 나아지나 싶더니 기말시험은 수학을 만점 받아왔다. 과외나 학원을 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가족 모두 놀라워했다. 나는 가슴이 벅차서 엉엉 울었다.

그런 기쁨이 채 가시기 전에 성적표를 들고 왔다. 막내는 전 학년에서 1등을 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내겐 그 어떤 지원보다 나를 더 힘나게 했다. 밋밋하던 입맛이 다시 돌아왔고 피로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일 년여 지난 때는 한 동안 쉬던 일을 다시 시작할 정도였다. 언제까지나 그 상태였으면 싶었다.

막내는 고등학교를 올라가서도 공부습관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그 집중력은 공부만이 아니었다. 운동회 때는 모든 종목을 뛰었으며 합창과 연극 등 학교 행사마다 다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성적이 조금씩 떨어져서 그만 원하는 대학은 못 갔다. 그렇지만 다행스레 어릴 때부터 원하던 수의대는 합격했다.


가슴 뭉클하도록 묵묵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 노력하던 어렸을 때의 막내를 떠올리면서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완치를 바라며 다시 용기를 내어본다. 하지만 나의 노력이 그다지 본이 되지 못해서인지 막내는 지금 잘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엄마처럼 안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운동해야지’ 하면 번번 모른 척했다. 그러다가 ‘보고’란 답조차 한 달여 지나서야 간신히 들었다. 그러나 그 말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까지 거듭 반복할 것이다. 막내가 어렸을 때처럼,

기러기도 멀리 갈 땐 서로 바꿔가며 파수꾼 노릇을 한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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