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의 연속

2. 태몽 요법

by 하리

못자리를 준비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니 아이들 사정이 어떤지 알아봐야 했다. 큰 딸은 휴일이라 올 것이고 막내는 멀리 있으니 포기했다. 졸업반이긴 하나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다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중간고사에다 주말마다 시험을 치지만 다행히 못자리할 날에는 비어있으니 올 수 있단다.

ㆍ 아들의 첫 모내기 ㆍ


셋 중 가운데 태어난 아들은 걸음마를 떼자마자 누나 세발자전거 밀어주랴, 한 살 차이 동생 유모차를 밀어줄 정도로 정이 많았다.

그 아들이 언제부턴가 위아래 살피랴, 어른들 눈치 보랴, 나름 힘이 들었던지 손가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말도 더듬거렸다. 학교에 들어갔으나 성적 또한 제 누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었다.

기다리다 보면 나아지겠거니 하고 참을 때가 더 많았지만 잔소리는 저절로 나왔다. 그래도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인내심이 바닥날 즈음 우연찮은 기회로 교육청이 주최하는 자녀 교육장엘 가게 되었다. 강의 내용은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설령 잘못을 나무랄 때도 좋음 말로 하라고 했다. 그래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가짜 태몽이라도 만들어서 들려주라고 했다.

그때 좋은 말 해주기의 예시였던 가짜 태몽을 만들어서라도 희망을 주란 말이 떠오른 것은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아들의 태몽은 몇 번이나 꾸었었다. 그중에 단연코 으뜸인 것은 길바닥에 큰 구렁이들이 쫙 깔린 꿈을 꾸었으니 일부러 이야기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랬건만 학년이 올라가도 강도가 세지는 것은 컴퓨터 게임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어눌한 말투도 여전했다.

“울 아들, 엄마가 너 가졌을 때 꾼 꿈이 참 좋았다네. 돼지랑 큰 집이랑 커다란 구렁이가 우글거렸으니 반드시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아들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며 믿지 않았다. 수시로 말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늘 비교급이었다.

“거짓말이지? 그러면 누나는 무슨 꿈을 꾸었는데 예쁘고 공부도 잘해?” 이런 식이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온 들판을 뛰놀곤 하니 달리기는 곧잘 해 상장을 받아왔다. 하지만 학습지는 일 년 내내 한 장도 보지 않고 차곡차곡 모으기만 하는데 이를 본 막내조차 제 오빠를 따라 하니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속이 시리고 터질 지경이었지만 고학년이 될 때까지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또 다른 기회가 왔다. 지역 도서관에서 독서지도 자격 과정을 듣게 되었는데 그날 배운 것을 집에 와서 곧장 활용했다. 그 과정 중에 자신의 목표를 글로 써보란 수업내용도 있었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빈 종이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지 써보라고 했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써 내려가란 말에 셋은 서로 남의 것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썼다.

그중에서 아들의 글 내용이 가장 현실성이 부족했으나 나름 그럴듯했다. 수학 점수가 채 50점도 되지 않는데 다음 시험에는 백점을 맞을 것이며 2학기 때는 부반장을 할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어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 엄마가 꾼 태몽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적은 것이었다.

그 글을 본 제 누나와 동생은 매번 구렁이 꿈 어쩌고 저쩌고 하는 엄마나 똑같다며 코웃음을 쳤다. 그냥 몇 문제 더 맞는다면 몰라도 백점을 맞겠다니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하며 맞장구쳤다. 그래도 어떻게든 목표를 정하라고 한 나까지 아들에게 나무랄 순 없었다. 내심 아들이 쓴 글의 결미 부분에 태몽 이야기가 나온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열심히 노력하란 말로 격려하고는 만약 그대로 해내지 못할지라도 실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다음 달 시험 날이었다. 그 며칠 전에 문제집을 사달라고 하더니 몇 장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이 집으로 오는 언덕길을 소리치며 뛰어 오고 있었다. 정말로 아들은 자신이 적은 대로 수학시험을 잘 친 것이었다. 이후 부반장도 되었다. 그 후 차츰 표정이 밝아지고 말투도 바뀌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한동안 시험 칠 때마다 제 성적 등수의 반을 뚝 잘라 낼만치 열심히 공부에 임하더니 고등학교를 거쳐 무난하게 대학생이 되었다.


돌아보면 나는 아들의 변화를 기다릴 인내심이 너덜너덜할 때마다 태몽을 떠올리면서 나 자신을 다스리곤 했다. 속깨나 태우던 그 아들이 내 눈에는 아직도 여린 모 같지만 스스로 못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뿌릴 내릴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나의 태몽 요법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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