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 창고매장 앞이다. 그냥 지나칠까 들어가 볼까 살짝 갈등한다. 그러다가 약속 시간이 남았으니 구경이나 해보자며 들어간다. 지금껏 평소에 꼭 필요하다 싶은 옷도 먼저 백화점에 가서 구경을 하고서 실제로 구매하는 곳은 인터넷이나 지하상가에서다.
결혼 후 십여 년 동안에는 아이 셋 낳고 키우느라 옷은 한마디로 대충 입고 살았다.
그러다가 시댁 친척 잔치 갈 일이 생겼는데 마땅히 입고 나설 옷이 없었다.
아버님께 용기 내어 말씀드리곤 돈을 받았다. 그렇게 하여 옷가게에서 바지와 치마가 딸린 정장을 샀다. 그 옷으로 큰일 칠 때마다 어떻게든 입었다.
친척 잔치도 몇 년 지나니 잠잠해졌다. 그런 중에 쉰이 되고도 짝을 찾지 못해 애태우던 시동생이 장가를 가게 되었다. 그때 예비동서로부터 받은 예단비 중에서 일부를 어머님께서 우리 부부에게도 주셨다.
남편은 반이상 뚝 잘라서 이름 있는 것으로 양복을 장만했다. 나머지가 나와 아이들의 몫이었다.
막상 옷가게를 가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아 그저 평상복으로 하나씩 사면될 정도였다.
그때 생각을 바꿔서 가 본 곳이 지하상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포장지에
싸인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채로 파는 창고매장을 발견했다. 처음엔 조심스레 한 두 장 고르다가 나중에는 아이들이 커서 대학 가서도 입을만한 것들도 미리 샀다. 예단으로 받은 돈이 바닥날 때까지 철 따라 사길 몇 달은 되었지 싶다.
그때부터 새 옷 장만은 신상이 아닌 최소 몇 년은 지난 창고매장에서였다. 소재가 좋고 디자인이 괜찮으면 일단 구매한 뒤 고쳐 입기도 했다. 그것은 그만 어쩌다에서 늘 있는 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들쑥날쑥한 수입의 시골 살이에다 경제권을 들고 있는 남편의 신조가 "티끌 모아 태산"이라 먹는 것도 아낄 정도니 철마다 유행하는 옷장만은 한마디로 택도 없었다.
이후 내게도 고정적인 소득이 생겼건만 여전히 창고매장을 애용했다. 피복비를 저렴하게 쓰는 대신 후원을 하거나 친목단체 회비로 사용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색상이나 천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 사기도 하고 사놓고는 안 입게 되는 낭비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자 이전과 달리 조금씩 형편이 나아졌다. 그러다 보니 통장에 잔액이 남을 때도 있다. 그것은 이전의 빈 옷장 채우기와는 또 다른 기쁨이다. 그런데도 계절이 바뀌면 나도 몰래 창고매장 앞에서 발걸음이 주춤한다. 외투 안에 입을만한 옷이 있지는 않을까, 혹은 바지라도 있을지 몰라, 등등의 이유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앞으로도 그 유혹은 쉽게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대신 더 꼼꼼히 따지는 알뜰 구매자가 되어 줄인 비용으로는 가족과 이웃에게는 기분 좋게 쓸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