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살다 보면 20

늦기 전에 (후)

by 하리

주차장 기득하던 차들이 술술 빠져나간다. 명절연휴 마지막날이다.

아침 안개 가득한 길을 트럭 몰고 달렸다. 앞이 잘 안 보이니 집중해야 했다. 그 와중에 아주 잠깐이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곁눈질했다.

시내옆으로 분홍 매화가 늘어져 있는 곳에서 꽃망울 몽글몽글한데 그중에 한둘은 이미 피고 있는 걸 본 것이다.

"야호, 앗싸! 꽃이다."

혼자 소리쳤다. 남편이 절 투어 갈 때 시어른 내외분을 모셔야 해서 바꾼 트럭이 가져다준 행운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암튼 첫새벽같이 간간 가까운 나무둥치만 그림 같아 보이는 데서 매화를 발견했으니 행운은 행운이다.


결혼 후 서른두 번째 설명절을 맞고 보냈다.

첫 번째 설은 임신 9개월 무렵이었다.


설 맞을 준비는 이미 한 달 전부터 거의 매일 뭔가를 해야 했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집에서 강정할 엿 만들기였다. 부지런한 어머님의 뒷수발만 들었지만 입은 옷은 이내 엿으로 진득했다. 장날에 맞춰 미리 말린 쌀과 콩등을 튀겨서 강정을 만들었다. 잘 마르라고 아궁이에 불을 넣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엿을 녹여 튀밥과 버무리고 얇게 펴서 널었다가 칼로 크기를 잘랐다. 그 사이에서 뒤집고 또 뒤집어가며 말리다가 강정 칼질을 배웠다.

두 번째는 가래떡 빼기인데 불리기를 마친 쌀이 읍방앗간에서 떡가래가 되어오면 서로 붙지 않도록 찬물에 담갔다가 나란히 널어놓고 며칠을 뒤집었다. 적당히 말랐다 싶으면 썰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두말이었으니 새댁땐 양이 얼만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다음 어머님께선 찹쌀로 동동주를 했다. 최소 열흘이상 숙성시켜야 하니 아랫목에 묻어두었다. 그 사이에 두부를 하기 위해 가마솥을 씻었다. 어떤 때는 가락엿에다 유과까지 만들었다. 시원찮거나 말거나 혼잣손에서 뒷수발 할 며느리가 생기니 더 신명 난 설맞이 준비는 그 후 어머님 스스로 몸이 불편할 때까지 이어졌다.

십 년까진 가짓수나 양이 늘던 설맞이가 이십 년쯤 되니 하나둘 기성화 되어갔다. 그러다가 작년까지 맞추던 강정도 올해는 다 샀다. 떡만 농사지은 쌀로 빼고 썰어서 왔다.

언제쯤이면 가족행사를 치르고도 멀쩡할 수 있을까 싶었다. 가정경제는 고사하고 푼돈 하나도 쉬 주어지지 않는데 책임져야 하고 흉내 낼 일은 명절 아니고도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아이들이 벙긋벙긋 웃으며 자라주어 시름을 잊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살다 보면'이란 제목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묵직한 제목으로 어떤 변화나 마음의 치유가 되기 전에 포기할까 봐 그날이 그날 같아도 부여잡고 왔다.

쓰다 보면 뭐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부연 설명을 더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으나 20편으로 마무리하련다.


여전한 듯 (다른 종교, 경제권, 가족수, 종양 달고 있음, 유료봉사 ) 여전하지 않은(각자 종교 존중. 남편으로부터 몇 년간은 생활비지원에 이어 약간의 국민연금 수령 , 종양이 자람.)

날들 속에서 가족이나 타인의 변화를 꾀하다 숨넘어갈뻔한 경험에서 내가 변하는 것이 더 확실한 답인 것을 배웠다.

그마저 잘 안 되는 것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새 또 다른 한 해가 빈백지로 주어지고 있다.

혹자는 잘 참고(그냥 버티기) 살다 보니 아들딸들이 잘 풀리지 않았느냐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나는 마냥 참지만은 않았다. 길 찾다가 잘 안되면 대신 나를 갉았다. 그 모든 불편함이 그만 종양으로 드러나 마음과 몸을 뒤흔든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를 붙잡고 살던 대로 그냥 살고 있다. 마음 비우기와 걷기와 먹는 것에 신경 쓰면서 말이다. 또한 삶에 대한 태도에서 의욕과 의 의지사이에서 아직도 시소를 타고 있다.

때로 낮시간은 생기가 줄고 밤은 깨어 있다.

뒤집어진 생활패턴을 다시 원상 복귀하려고 노력할 때다.


늦기 전에 여유롭게 기꺼이 잘 해내보려고 한 걸까?

연말연초 집안일을 치를 때마다 어머니처럼 몰입하는 흉내를 냈다. 돌아서면 몸살이 따를 줄 알면서도 말이다.

이번 설은 나름 조심조심했다.

여전한 어머님 발걸음과 눈짓과 말씀에도 의연하려 했으나 다 자유롭진 못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다보내고 마지막 정리 후 집을 나설 때 구순이 된 어머니의 한마디

"애 묵었다." 란 말씀을 들은 것이다.

몇 년 전 당신께서 아플 때 평소보다 자주 들른 내게 '미안하다. 고맙다.'란 그 말씀 이후의 또 다른 마음표현이었다.

고부간에 사랑과 고마움보다 원망과 한이 더 많아 오래 아파하는 사람도 더러 있던데 나는 그간 어머님께 듣고픈 말을 다 들었으니 이만하면 된 거 아닐까?


어떤 형태로든 삶은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