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해 드디어 집을 떠나 왔다. 무려 8개월을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면 불안 대신 나을 희망을 믿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결정하고 집을 나설 준비 했다.
작년 이맘때에 김장 후유증으로 목소리가 잠겨서 바로 옆에서 듣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울 지경이었었다. 봄이 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하루하루 버티었다. 집은 춥고 바깥 기온도 예년보다 더 차가운 날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버티기엔 내 마음속의 갈등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흔들었다. 집에서 지내다 보면 방법이 더 생기던지, 몸이 적응하든지 어떻게든 살아 낼 수도 있는데 혹시나 인내심 부족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리하여 불안감이 덮칠 때면 그 마음을 떨치려 무척 애썼다.
누가 알랴? 병원 검진 가면 담당 의사만 불안불안 동동했지, 당사자인 난 어느 포인트에서 동아줄이 내려질까 미루고 또 미룬 날들만 차곡차곡 쌓였다. 불안에 떨며 처음 펴본 성서에 '서두르지 마라, '는 말씀을 읽고 받아들인 뒤여서인지 병원 마당에서 예약한 수술날을 더 심각한 환우가 있다며 사정하는 간호사와의 통화 중에 수술시간을 양보했었다.
그다음 '곧장 집으로;란 말씀을 수녀원에서 읽은 뒤에 자연 치유를 위해 노력하던 요양을 멈추고 집으로 왔었다. 나를 반기는 건 묵묵히 일하면 된다는 남편의 찬바람을 감내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으나 올망졸망 아이 셋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지는 듯 이기는 듯, 멈추다 자라기를 반복하는 종양을 달고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지낸 지 15년을 채운 것이다.
유일한 보험금을 지난달 마지막으로 넣었다. 일도 하는 듯 마는 듯, 비교적 소박한 금액이나마 내 손으로 벌어서 쓴다는 자부심이 있긴 했다. 그 돈의 일부는 국민연금을 연장하는데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 국민연금을 비록 조기수령하고 있지만 그 또한 힘없고 나이 애매한 데다 유병자인 나로선 매우 보탬이 되고 있다.
좀은 힘들게 유지한 보험을 어느 정도 믿었건만 여직 그 어느 부분도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오리발에 살짝 화가 났었다. 지급 거부 요건이 생검, 즉 조직검사지가 없다는 한결같은 결미다. 담당의조차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통 사람은 산정특례가 끝나갈 때 되어도 버티고 있으니 하는 수 없어 진단을 해주었다. 이후의 검사와 치료 시에 금전적인 부담이라도 덜어보라고 했건만 보험회사는 냉정하다. 한마디로 절대 손해 볼 마음 없다는 것이다. 진단비로 끝나지 않을 앞날의 진행으로 봐서 결코 만만한 대상은 아니게 되어버린 게 현실이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유병인 상태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다가? 비록 자비 낼 각오하고 들어왔지만 지금껏 의료적인 도움은 처음이다. 암요양환자로 입원했지만 실제로 뒤를 돌아보면 처음 발견 했을 때나 중간에 여러 번 다가왔던 고비와 비교해도 지금 현재 상황이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종양이 막무가내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라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비교적 겉모습만은 환자 같지 않은 환자로 들어왔지만 검진상으로는 가장 큰 종양을 달고 있으니 의료진이나 병원 측에서 보면 예측불허의 괴상한 환자임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양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어떤 행로로 나아갈지가 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주목되고 있는 시점이니, 기대하시라,!
암 15년 경력자의 좌충우돌 요양일기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