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취침이라고요?
거실 온도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의 마음온도가 더 문제라 자기는 끄떡없다며 내 의사를 번번이 무시해 버린 결과다.
"겨울 되기 전에 어떻게든 해 봅시다. 태양광을 설치해서 전기 쓸 때 마음 편히 사용하든지, 나무 보일러를 좀 더 실용적으로 사용해 볼 준비를 하든지요."
"아직 멀었는데 뭐, 가을에 하면 되겠지." 하며 남편은 슬그머니 미뤘다.
가족들 손수 지었다는 명목아래 악착같이 살아 낸 집이었는데 해가 거듭할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것에 반해 난방기구는 변화가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겨울이 두려워져 갔다. 기온이 떨어지면 쉬 잠들지 못했고 가까스로 잠들었다가도 이내 깼다. 그러다가 지난해 겨울은 정말 아슬하게 살아냈었다.
조마조마한 상태로 간신히 겨울을 보내고 드디어 봄을 맞았나 했더니 4월에도 눈이 내릴 정도의 영하날씨는 계속되었다. 그 무렵에 예약된 검진을 했다. 좋지 않았다. 외려 더 뒤로 밀려나있었다. 아니다. 실제 불안하던 마음보다는 어쩌면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새로 맞을 겨울은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데서 올라왔다.
그렇게 저렇게 내 나름으로는 평소보다 자주 언급했다고 생각했지만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와도 남편은 집의 난방에 대한 그 어떤 조치나 행동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어 뒤통수치기 없다는 단서를 붙여 놓고 직접 난방기를 교체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한 달 남짓 지나니 이내 영하권의 날씨로 바뀌자 거실은 영상을 간신히 유지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하로 바뀌자 어쩔 수 없이 지낼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아들이 사는 아파트도 생각해 보았고, 서울에 사는 막내집이 맨발 성지인 대모산이 가까워서 후보지로 올려 보았다. 하지만 이전처럼 그냥 추위를 벗어나는 상황만으로는 별 진전이 없을 것 같았다. 즉, 이전과 달리 금액이 들더라도 최대한 부작용이 적은 물리적인 치료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바닷가에 있을 만한 요양병원을 훑었다. 하지만 대부분 관광지와 가까운 곳은 경비가 만만찮고 집 근처 병원 역시 새로운 시설이라 제시하는 금액이 부담스러웠다.
요양병원에 처음 짐을 내릴 때였다.
"집보다 훨씬 따스해서 다행이야 엄마! 열심히 치료하고 좋아져서 빨리 집으로 오길"
그렇게 말하고 딸은 떠났다. 저녁밥을 먹자 이내 밤이었다. 처음 보는 한방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씻은 얼마쯤 뒤였다.
"일찍 불 꺼도 되나요?"
먼저 입소한 방동기의 말이었다. 몇 시냐고요? 평상시 같으면 아직 바깥에서 한창 활동해야 할 때였다.
8시 조금 넘어 여행프로그램을 켜놓고 방의 불을 끄자 이전의 맹숭맹숭함은 간 곳 없이 따스한 방 온도 때문인지 엎치락뒤치락 한참 뒤에 나도 몰래 잠들었다.
요양 일번지인 따스한 온도와 규칙적인 생활이 그렇게 얼결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