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하기 두려워서

손금

by 하리
살아 있는 한 채워야 할 공간은 많다. 무엇을 어떻게? 가 숙제일 뿐,

손금

봄바람은 불건만 겨울잠에서 덜 깬 곰 마냥 스물한 살의 나는 그날이 그날 같아 심드렁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 라일락꽃향기로 어찔할 무렵 성당 2층 성가대가 술렁였다. 단원들의 중심이 대학생이라 날로 피어나고 있는 때에 군 복무 중인 선배 단원이 휴가를 맞아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일일이 인사를 하는지 연습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단원들에 싸여 있었다. 여학생들의 손을 잡고 요리조리 살피며 연애 중매 어쩌고 하는 양이 손금을 보는 모양새였다.

며칠 뒤 그의 군대 복귀 위로 모임에서 또다시 손금이 대세였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마저 적당한 때에 좋은 사람 만나겠다는 말을 듣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보라고 재촉하는 통에 하는 수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첫마디가 그해 안으로 결혼할 운이라 했다. 아니면 한참 뒤에야 올 것 같단다. 그에 덧붙여 길이 둘인데 힘은 좀 들겠지만 어느 길이든 성공한단다.

냉큼 손을 뺐지만 얼결에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혼자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데다 친구 몰래 수녀원을 들락거리며 소모임을 다니던 중이었다. 얼토당토않게 해 넘기기 전에 결혼 운이 있다니 그 운을 놓치면 한참 뒤에 할 것이란 말은 황당하지만 무시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성공한다는 말은 한동안 귓전에 맴돌았다.

어디 이력서를 내거나 취직 공부에 몰입할 진득함도 없이 성당만 오가다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곳은 한 해전에 얼마간 다녔던 일터와 비슷한 지역이었다. 비록 지역의 국이었지만 국내서 알만한 신문인 데다 대구에서도 손꼽을 만치 구독자가 많고 보니 경리를 구하고 있었다.

지국에 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나면 배달 책임자인 총무들이 새벽녘에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에 어디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간밤에 배달 학생이 오지 않아 더 바빴다는 둥, 어떤 집은 이사를 갔는지 신문이 쌓여있더라는 등의 새벽 이야기가 점심 나절이 되도록 쏟아져 나왔다.

내가 한 일은 그날그날 배달된 부수와 혹시 배달사고가 난 곳을 총무에게 전달하거나 오후에 수금해온 돈을 맞추는 것이었다. 틈틈이 여러 신문을 꼼꼼 보는 재미도 괜찮았다. 그러다 월말이면 수금한 신문대금의 일부를 지역 본부에다 주고 직원들의 급여를 정리하곤 했다. 그런 언젠가부터 본부 담당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로만 통화하던 담당 직원의 첫인상은 내 눈에는 영락없는 아저씨 같건만 총각이라고 했다. 간간이 순방 차 왔다며 들리거나 직영 확장 요원 교육을 한다며 오가기를 몇 번하더니 차츰 무거운 양복 대신 밝은 티셔츠를 입고 왔다.

그 얼마 뒤 본사 판촉요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담당 직원이 서울 명문대 출신이란 것부터 시작해서 신상들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나이 차이가 좀 나면 어떤가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이 차이가 한 손을 넘어서면 아저씨’란 내 말이 귀에 들어갔는지 당사자는 그저 누굴 바꿔달란 전화만 자주 하곤 했다.


그러구러 가을이 이슥할 즈음에 담당 직원은 부친상을 치른 후 들렀다가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시고 갔다. 그 후 선을 봐서 결혼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한동안 연신 들락거리던 판촉요원들 발걸음도 뜸해졌다. 그 무렵 나는 광고지 뒷면에다 타자기로 글을 써서 투고한 글이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한동안 작은 부수지만 신문을 돌리기도 하면서 지국의 형편에 맞춰 일하고 있었다.

겨울이 가고 또 다른 봄이 올 무렵 담당 직원의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그제야 해 넘기기 전 결혼 운운하던 손금 이야기가 정말이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하던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간 어떻게든 엮어 보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의 뒷말도 귀에 거슬렸다. 그동안은 신문지 대가 밀리거나 부수가 줄어도 별말 없더니 연신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다른 지국과 통합한다느니 지국 분위기가 이전만 못했다. 나는 쪽지 한 장 남기고 훌쩍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집에서 얼마간 머물다 다시 도시로 나왔으나 마음 붙일 곳은 여전히 성당뿐이었다. 소속감이 있는 다른 단원들에 비해 주눅이 든 나는 성가를 불러도 마음 한쪽이 헛헛했다. 비록 직접 뛰진 못하나 아무런 노력 없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란 손금풀이만 의지할 순 없어 이전보다 더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당신 일을 하고 싶어요. 대신 이번엔 혼자 있게 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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