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 나무들이 새잎을 틔우는가 싶더니 연두빛깔을 띄면서 점점 더 색상이 짙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늘은 선선했는데 이젠 일부러 그늘을 찾고 있다. 한마디로 꽃바람이 싱그런 사월이다.
마을 앞길 벚꽃도 며칠 눈이 부시게 피어나더니 한 주일 사이에 꽃바람이 되고 말았다. 꽃이 피고 지거나 말거나 바야흐로 농사철이 되자 집 뒤 텃밭 돌봄도 개시해야 할 때다.
맨 처음 감자 심을 골 만든다고 비닐을 덮을 때 좀 거들었더니 몸살이 났었다. 그다음 감자 심고 난 뒤에는 허리를 삐끗했다. 그럼 텃밭 돌봄은 누가 하냐?
본격적인 일철이라 모내기할 논 장만에다 밭에는 소먹이용 풀을 갈아야 하니 진짜 일꾼은 넓은 땅과 큰 기계 만지기만도 벅차다. 하니 작은 텃밭 정도는 내가 해야 하는데 움직이는 족족 탈이 나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머님 전용 밭이었기에 경제작물을 심고 가꿔서 용돈 정도는 너끈히 장만하시던 곳이었다. 하지만 점점 기력이 쇠해지시니 손 넣을 힘이 없다고 하시기에 일찌감치 비닐을 덮아놓기만 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전 같으면 어머님께서 밀차를 밀고라도 올라오셔서 감자 심은 걸 살피셨을 텐데 그마저도 엄두를 못 내고 계신 거였다.
감자골 옆에도 비닐을 다 덮는다고 했으나 골짓기가 애매한 자투리 땅이 남겨졌다.
그곳이야말로 진정 나만의 텃밭이 된 셈이다. 찾아보니 작년에 뿌리고 남겨둔 채소 씨앗 봉지가 몇 나왔다.
그렇게 풀들이 올라오기 전에 쑥갓과 상추 아욱에다 열무와 얼갈이배추까지 뿌렸다.
그 일을 하고 나니 이제는 왼쪽 눈이 한 번씩 붉어지다가 따끔거려서 안과를 갔더니 눈동자 바깥으로 이물질 있어 피로하면 염증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허리에다 안과치료까지 받자니 그만 감자를 심고 열흘이 지나도록 감자밭을 살펴보지 못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기온이 오르자 시동생이 고추 모종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얼결에 채소 씨 뿌린 옆 골에다 옮겨주었다.
다음날 아침 혹시 시들지는 않았을까 하고 가 보았다. 그런데 밤새 고라니가 왔다 갔는지 난리가 났다. 훌렁 뒤집어져서 뿌리가 하늘을 보는가 하면 간신히 뿌리를 달고 있는 게 반 이상이다. 그나마 고라니가 제 키만치 멀리뛰기를 하면서 입을 데었는지 더러는 멀쩡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고라니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뭔가 조치를 해야 했다. 마치 느지막이 귀촌한 듯이 몇 년 전부터 힘과 시간이 나는 틈틈 직접 채소 씨앗을 뿌리고 키우기는 했으나 대부분 고라니의 밥이 되고 말 뿐이었음을 잠시 망각한 것이었다. 작년에서야 겨울 김장용 무 배추조차 고라니가 속 알맹이부터 파먹는 것을 보고서야 부랴부랴 남편이 목장용 전기 철책으로 간이 울타리를 쳤었다. 하지만 옆 논벼를 베기 위해 벗겨 두었다가 다시 설치하지 않은 채 겨울을 지나온 것이었다.
정말 이번에는 채소를 키워먹을 곳이라도 우선적으로 보호할 목적으로 망을 사고 지지대도 샀다. 그 참에 긴 호스도 샀다. 그러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 꼴이지만 혼자 무엇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기쁨과 뿌듯함이 올라왔다. 그렇게 해서 바쁜 남편의 손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망치를 찾아서 지지대를 박고 망을 설치했다. 모처럼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하는 때에 바람은 왜 그리도 부는지 혼쭐이 났다.
다음 날 안심이 안되어 한나절 내내 설치된 망을 보수했다. 그 일을 할 때는 마무리될 때까지 힘든 줄도 몰랐다. 이번에는 얼굴이 벌겋게 익어버려 그대로 착상을 해서 보는 사람마다 어디가 더 이픈가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제야 옆 밭을 보노라니 감자 심은 자리가 마치 어린 소녀들의 첫 브래지어가 필요한 젖가슴처럼 뾰족이 올라와 있다.
그랬다. 심어 놓고도 물은커녕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지냈어도 감자 심은 곳은 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었다.
삼십 년 된 농부 아내가, 아니 육십 년 된 농부의 딸 이건만 감자가 싹이 난 것에 대해 뻔뻔할 만치 놀라워하고 있었다.
채소 울타리가 곧 나만의 새 울타리라도 되는 듯 의기양양해하며 아들딸들과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사진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