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결혼 생활 내내 참으로 다사다난했지만 그래도 마당은 그 많은 것을 품고 또 녹여내게 했다.
선본 지 한 달 만에 후다닥 치러진 결혼에 지대한 공을 한 분은 시어머니셨다. 장가들 아들보다 더 부지런히 오가며 여기저기 사주를 넣고 알아본 뒤 찰떡궁합이라며 부추기던 분이셨다. 그 후 결혼 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나는 남편 취향이 아니었다며 뱉어낸 분도 다름 아닌 바로 시어머니셨다.그것은 바람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더 다양한 부추김과 회오리로 불 바람의 시작을
애초에도 눈치를 채지 못했으며 그때도 몰랐다.
어머님의 지나치리 만치 직설적인 대화법을 말이다. 또한 강약약강의 성격인 것마저 어머님의 첫 자식인 남편이 빼박일 줄은 더더욱 말이다.
어머님께서는 평소 당신이 쥐띠라 어디든 나가면 뭐든 물고 온다는 것을 자주 말씀하 셨다. 그만치 타고난 재바른 손놀림과 부지런히 노력하신 결과 시아버지의 가출로 제산이 애법 축이 났어도 농사일에 열중하다 보니 다행히 집안은 돌아갔다.
시집온 처음 몇 해는 목장 이전과 동시에 새집을 짓는다고 온 식구들 이 농사짓는 틈틈 손을 보태느라 바빴다.
논두렁 몇을 없애고 땅을 고른 뒤에
입구 잡종지 쪽으로는 작은 집을 앉혔고 뒤로 목장을 지었다.
애초 질퍽한 논이라서 집 지을 때도 고생했지만 이후 십 년 넘게 마당 고르기는 거의 일상이었다.
평소에도 흙이 신발에 묻는 건 당연한 데 가는 비라도 내린 때는 몇 날 며칠을 진흙탕에서 뒹군 듯했다.
집을 다 짓고 좁은 들길로 소를 앞세워 몰고 오면서 이사를 했다. 그때 전기는 들어왔으나 전화기 설치가 안되어 있어 많이 불편했다.
막 이사를 한 첫해 겨울이었다.집안은 추웠지만 눈이 오면 큰애와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 녹은 마당은 비 온 것보다 더 질척했지만 눈 있을 동안은 즐거웠다.
사료포대에다 짚을 넣고 아이를 태워주었더니 좋아했다. 그것은 밑으로 동생 둘이 태어나니 차례대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조금 자라자 더 재미나게 논다고 경사가 진 오르막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몇 해 후에 농사용 저수지 물길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 작은 물길이 집 앞길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봄만 되면 거의 날마다 물이 내려왔다.
아이들과 수로 안에서 물놀이하다가 목간도 하고 빨래도 했다. 그러다가 떠내려온 뱀에게 물리기도 했지만 수로가 생긴 후로는 봄부터 가을까지 청량한 물소리를 수시로 들을 수 있어 참말 좋았다. 관리가 잘 안 되어 번번 고생하던 마당에다 수로가 생기고 난 뒤에 잔디를 심었다
그 잔디가 해를 거듭할수록 자리를 조금씩 넓혀갔다. 어느 여름 방학이었다. 아이들이 텐트 치고 놀러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때 우리 집은 IMF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라 텐트 도구를 살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우유를 짜야했고 할 일은 끝이 없었다. 그때 잔디가 애법 자라서 은근 폭신했다. 가끔 돗자리를 깔고서 누워 별과 반딧불이를 보는 거로 위안 삼다가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럴 테면 아이들 은 모기와 파리에게 시달리면서도 무척 좋아했다. 그러자 한 번은 애들 아빠가 시동생네에서 텐트를 빌려왔다. 그 텐트를 마당에 치고 캠핑 분위기를 냈다. 그러다가 진도를 뺀 것이 마을 뒷산 조상 산소 옆에다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고 내려오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아빠랑 같이 잔 것이 좋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직장으로 학교로 가고 나니 이제는 부부 둘만 남아서 방학과 휴가를 기다리고 있다.
곧 잔디가 잘 자란 여름이 오면 모처럼만에 마당에다 텐트를 치고 싶다.
하늘 가득 반짝일 별들을 보면서 새로운 추억을 쌓을 것을 기대하니 마당에서의 하루하루가 설렌다.
구석구석 풀을 뽑고 꽃씨 뿌린 것이 잘 자라서 향기로운 꽃들까지 보탠다면 더욱 행복할 것 같다.
끝이 없을 듯 미당으로 불어 재끼던 바람은 이리저리 나부끼다 방향을 틀어 휙 사라진다.
돌아보면 삶의 바람도 늘 불어 닥치긴 했으나 조금씩 힘이 빠지면서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