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고을 성주는 예비 문화도시 프로그램을 2년간 하였으나 2021년도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간 얼결에 내가 사는 대황리 구동골 마을 안에서는 수박 겉핥기 식이라도 그간의 삶의 형태를 조금 벗어나서 문화예술에의 체험 시간을 조금이나마 누릴 기회를 잘 잡아서 실행했었다.
하지만 수백 년 이어져온 마을의 분위기는 기존 원주민의 삶과 사고는 누가 들어와도 자연 흡수되리라는 암암리의 공식들이 흔들리는 분깃점에 도달했다.
한마디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치고 있는 셈이 되었다. 그것은 최근에 밀물처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귀농 귀촌한 분들이 많아진 결과이다.
애초에 먹고살만한 동네가 된 것의 뚜렷한 근거를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농촌은 농사가 우선이라 경작면적이 넓거나 물 공급이 원활해야 하는데 땅도 땅이지만 물이 귀한 동네다. 여름 장마철이 되어야 간신히 물소리가 날 정도로 연중 대부분은 건천 같은 실정이다. 그래도 꼼꼼히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는 작은 저수지가 골짜기 꼭대기 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농사짓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던 듯하다.
또 하나는 조선 개국 공신 영의정 배극렴의 양자로 들어간 후손들의 세거지이기도 해서 아마도 소작할 땅이 얼마쯤 된 것 같다.
마을의 또 다른 명칭으로 고려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좋아 굳혀있다는 뜻의 굳을견 을 써서 견동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굳은 동네가 발음하기 좋은 말로 바뀌어서 굳은 골이라 하다가 구동골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마치 사람이 많고 골짜기가 넓어서 아홉 동네 같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부른지도 오래되었단다.
여하튼 기존 터잡이 원주민의 자녀들은 학업을 마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 빈 집이나 묵혀놓은 땅들이 집으로 사람들로 차고 있다.
비록 결혼으로 인해 마을 주민이 된 지 어언 삼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처음 새댁 때나 이후 아이들이 클 때까지 어디 집 나설 일만 찾던 내게 아이러니하게도 마을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몸에 중한 병이 생기고서 나름 치료차 동분서주하다 다시 돌아온 뒤부터 말이다.
마을 안에 문화도시 프로그램. 도입 3년 차이고 보니 어느 정도 자립심이 생겨야 할 때다. 하지만 지원금도 그렇고 사림들 마음도얻어야 하는 등의 해야 할 일은 복잡다단하게 많으니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하는 수 없어 신청 마감 한 시간 전에 이전 농담처럼 던진 말이 떠올라 후다닥 빈칸을 메꿔 나갔다. 단 3명만 있어도 된다는 조건이 딱 맘에 들었다.
그리하여 매사 적극적이고 의욕적이며 참여도가 높은 최근 귀농 귀촌하신 분들의 참여의사를 믿고 삶의 후반부를 살겠노라 기꺼이 마음을 내고서 들어오신 분들로 구성된 답사팀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앞으로 동네와 성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성주기 궁금해'란 제목 아래 모여서 반년 동안 뚜벅뚜벅 걸으며 보고 묻고 같이 알아 갈 작정이다. 또 그렇게 알게 된 정보와 과정에서의 느낌들을 책으로 묶어볼 계획을 세웠다.
비록 대충이라도 알아보자는 뜻으로 답사팀 이름은 순수 우리말 인 '구메구메'라 짓고 막 출범의 닻을 올린 5월의 한가운데를 설렌 기대감으로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