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타고난 복이 부족하다면 이름을 잘 짓든지 또는 남에게 사랑을 베풀다 보면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도 있지요.
그럼 저는 타고난 복을 어렸을 때 다 누린 덕에 그 이후로는 오래도록 이름 복으로 간신히 버티었나 싶습니다.
'말이 없다 , 시원찮다 , 심약하다'로 대변하던 나로선 어떻게든 믿음이란 생명줄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세월을 엮어 왔습니다. 그런 나에게 익숙한 듯 어쩐지 낯설게 다가온 호칭 때문에 갑자기 당황스럽습니다.
누구든 삶의 골속 골속 들여다보면 기쁨과 슬픔과 분노가 씨줄 날줄이 되어 삶의 판이 짜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슬아슬 좌충우돌하면서요.
한때는 삶의 능선에서 온몸으로 비를 맞기도 하고 바람에 비틀거리다가도 추울 땐 나뭇잎으로 불을 피우기도 하고 더울 땐 누군가의 그늘에서 쉼을 누리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이름은 늘 저울추를 혼란케 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너무도 평범한 이름으로 쉬 지어진 듯 하지만 그 속내는 따로 있을 수도 있겠지요
어떤 사람이나 사물들이 그 이름으로 불릴 때는 어쩌면 값을 매길 수 없을만치 깊은 뜻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갈까요? 그러면 도대체 '이름'은 무엇을 뜻할까요?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전에서 이름이란 '존재의 가치와 의무를 뜻한다.'라고 정의하고 있고요. 이름이란 '이르다. 부르다'란 해석이 붙어 있답니다.
즉 사물은 그 이름을 갖음으로써 의미를 갖고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토록 가치 있고 의미로운 이름이 있는 나로 살아오면서도 역할은 수시로 바뀌어 왔지요. 딸ㆍ학생ㆍ친구ㆍ아내ㆍ엄마ㆍ며느리ㆍ동료ㆍ등 등 나의 이름은 나에게 와서 나를 의미하고 존재의 가치를 매기기 시작한 지 육십 년 만에 어쩌면 단순한 역할 이상의 또 다른 이름자를 마주하고서 다양하고 미묘하던 나 자신의 내면 반응에 스스로도 놀라워하면서 하나하나 풀어보고자 합니다.
결혼 이후 여직 시어른 내외분으로부터는 '야야' 나' '누구 오마이''가 나의 호칭이었고요. 남편은 지금껏'어이'가 전부였어요. 그렇게 나를 부르는 호칭이 그렇듯 나의 존재 의미가 애매하다 보니 항상 흔들리며 살아온 지난날들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다니다가 혹시 어디서 소리가 들릴까 싶어 어머님 폰으로 내 번호를 눌렀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오마이'라고 저장되어 있더군요.
어쩌다가 제가 어머님의 '오마이'가 되었을까요?
그토록 못마땅해하신지가 몇십 년인데요. 그간 나의 인내심 부족으로 아이들이 어긋날까 고심하다 몸과 마음이 아파 이름자만 남기고 사라질뻔한 적이 수도 없었는데요.
그런 내게 이제와 서야 '오마이'라 짓고 부를 준비를 하고 계신다니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이 적응해야 하나요?
평소 시어머님께서는 워낙 타고난 성품이 부지런하셔서 일을 하실 때는 당연하고요
. 그 성품은 일뿐 아니라 불편사항이 나 고통을 느끼실 때도 부지런히 표현하셨어요. 당연히 감정표현을 하실 때도 쉴틈이 없으셨지요.
그런데 언제 그리 저장하셨을까요? 얼마 전 폰을 바꾸셨다고 하더니 누군가 도와주는 이와 상의를 한 것일까요?
지금껏 알토란 같은 아들딸 며느리 사위 다 두고 하필이면 가장 시원찮아서 못마땅하다는 감정을 가감 없이 늘 표현하고 사시던 분께서 단지 맏며느리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리 붙였나 싶어 순간 당황했지요.
이제는 예전처럼 일도 못하시고 걸음도 마음대로 안되어 부지런히 속이 타신다고 하소연하시는 어머님의 그'오마이'는 앞으로 어떤 역할 수행으로 이름값을 해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그나마 지금이라도 그리 지어 놓고 계신 것 만도 코끝이 찡할만치 값지게 다가오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이전의 그 어떤 역할 수행에도 온 힘을 기울여서 잘 닦고 가꾸지를 못한 것 같건만 더 늘어난 어머님의 '오마이'역은 어떻게 살아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