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하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아한다. 첫 번째 사업이었던 옷 장사를 폐업한 후, 두 번째 사업은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니까 분식집, 아니면 디저트를 좋아하니까 카페, 아니면 매일 반찬을 먹으니까 반찬가게. 주로 먹는 것을 판매하는 가게들을 생각해 봤다.
미리 테스트를 해보겠다고 집에서 요리하고 레시피를 수첩에 적어 나갔다. 가족들에게 맛을 물어보고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부모님이 굉장히 인색한 점수를 주었다. "이건 질기다.", "저건 싱겁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싱겁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나는 소금을 계속 추가해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금을 넣어도 싱겁다는 말이 돌아왔다. '아니, 이건 짠 거야. 짠 게 확실한데, 왜 이래?' 나는 점점 평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싱거워."
"아니야, 괜찮은데. 정 싱거우면 개인적으로 소금을 쳐서 드세요."
"네가 넣어야지."
"아니, 먹는 사람이 알아서 넣으라고!"
나는 폭발했다. 그동안 좋은 말을 못 들어서 감정이 쌓여 있었다. 온갖 과거의 일이 다 살아났다.
나는 인터넷에서 본 어떤 정신과의사의 조언대로, 내게 일어난 이 화나는 일을 상황, 감정, 내 의견으로 3종 분류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레시피를 적었던 수첩이 아직 많이 남아서 레시피에 이어서 글을 적었다. 그때부터 레시피는 사라지고, 내 감정의 기록으로 수첩이 채워졌다.
그즈음, 나는 프랑스어 배운다고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의 원서를 번역하며 읽고 있었다. 배가 계속 부서지고 있었다. 부서진 배가 또 부서졌다. 100페이지를 읽어 나가도록 주인공이 안 나왔다. 나는 너무 답답했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웬 말이 그렇게 많은지, 관련 없는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도 쓰고 있었다. 프랑스어 초보자인 나는 맥락을 찾을 수 없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헤매고 다녔다. 내 마음이 바로 그랬다. 부서지는 배에 내 감정을 이입했다.
그렇게 내 감정과 웃는 남자와 프랑스어는 한데 섞여 '짬뽕'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짬뽕 레시피를 제대로 적어가고 있었다. 프랑스어 욕을 파파고에서 찾아 '조미료'로 썼다. 아무도 프랑스어를 못 알아봐서 내 입맛에 맞는 맛있는 요리가 나왔다.
배는 결국 침몰하여 바다에 가라앉았고, 그제서야 '웃는 아이'가 등장했다. 나는 여기에서 멈췄다. '이 아이는 또 어느 세월에 남자가 되는 걸까?' 더 이상 힘들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분량이 800페이지나 되어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요리는 완성되었다. 이 요리를 다른 사람에게도 선보이고 싶었다.
'자, 저의 짬뽕이 나왔습니다. 맛이 어땠나요? 조미료는 뺐습니다. 모두 건강해야 되니까요.'
마지막 회입니다.
브런치를 통해 제가 쓴 글을 처음 올려 봤습니다.
모자라고 서툰 저의 글을 읽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