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끈적한 '무'의 시선

존재와 무

by 겨울햇살

"숨이 막힐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수술을..."라고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숨이 막힌다는 것은 비닐봉지로 얼굴을 씌웠을 때의 느낌일까?' 나는 한동안 심장이 빨리 뛸까 봐 걱정되어 잘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10년 정도하고 있던 사업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 몸도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정리하고 있었나 보다. 순간 죽음이라는 것이 가까이 왔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폐업신고를 마치자, 내 할 일을 다한 것처럼 당시에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죽음을 대면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할 일을 애써 생각했다. 철학책 한 권쯤 안 읽어보고 인생을 마감한다면 조금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거대한 진실 같은 것이 거기 있었으면 어쩌지?'


나의 집 근처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나는 도서관의 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며 어떤 책이 어디 있는지 머릿속에 담는다. 규모가 워낙 작아서 가능했다. 철학책이 모여있는 곳은 일부러 피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많지 않은 책 중에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 : Essai d'ontologie phénoménologique)>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무(無)'라는 것이 한자로 '없다'라는 뜻이니까, 그것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꽤나 두꺼운 책이었다. 단어 être(에트흐)는 '~있다, 존재하다, 존재'라는 뜻이고, néant(니엉)은 '무, 무가치, 없음'이라는 뜻이다.


책을 읽다가 나는 어떤 단어가 자꾸 에 거슬렸다. '끈적끈적'이라는 말이었는데, '무'는 '존재'에 '끈적끈적'하게 붙어있다고 했다. 나는 '혹시, 끈적 끈적이라는 표현이 잘 못 번역된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이 들었다. 구글 번역이 이상한 것처럼 말이다.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호기심 때문에 생각지도 않게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어만 사전에서 찾아보았는데 번역이 잘 안 돼서, 문법을 공부했다. 조금씩 프랑스어를 읽을 수 있었다.


영화 <무간도>는 경찰과 범죄 조직원이 서로 상대의 영역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는 내용이다. 경찰 역의 양조위와 조직원 역의 유덕화는 본인이 스파이면서, 상대편에서 보낸 스파이의 감시를 느낀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되는데, 그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통을 무간지옥에 빗대어 표현했다.


'무간(無間)'은 불교에서 유래된 말인데, '끊임없다'라는 뜻이다. 무간지옥에 이르는 길이 무간도이다. 지금 두 주인공은 고통의 길에 서있는데, 곧 지옥으로 갈 예정이라는 것이다.


'누구라도 세상의 법도를 어기면, 이 무간에 떨어져 다시는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영화 <무간도>를 통해 끈적끈적하다는 '뉘앙스'를 이해했다. 영화에서 각각의 조직은 작전이 새어 나가자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 스파이는 이미 오래전에 잠입해 있었지만,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 인식을 '무'라고 한다. '존재'는 원래 자체로 온전하게 있었는데 '무'가 옆에 생긴 것이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인식한 순간,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다. 감시당하고 있다는 이 느낌, 그것이 바로 '끈적끈적'이었다.


죽음은 원래 태어남과 동시에 같이 존재한다. 나는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새삼스럽게도 가까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살아있음에도 죽음의 끈적끈적한 '시선'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죽음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죽음을 생각하는데서 오는 신경쇠약, 그것이 바로 나의 무간지옥이다.


내가 사막 한 가운데 외롭게 떨어질 때면

저 멀리 여우 한 마리가 다가온다.

한 발짝, 두 발짝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는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식은땀이 난다.

여우가 말한다.

그러니까 '길들여진다'는 것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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