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짐을 바다에 모두 던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by 겨울햇살

수년간, 그러니까 거의 15년 동안 그 친구는 꿈에 자주 나왔다. 대학교에 다닐 때, 단짝인 친구였다. 꿈 속에서 나는 강의실을 못 찾아 헤매고 다니고, 시험을 봐야 되는데 지각을 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일찌감치 저쪽 앞에 앉아 수업을 들었고, 시험을 완벽하게 치르고 있었다. 나는 단짝 친구인 나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그렇게 혼자서만 행동하는 모습에 야속해했다.


수년을 원망했던 대상은 바로 '나'


같은 꿈이 몇 년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꿈의 내용이 바뀌었다. 졸업식장이었다. 그 친구는 저쪽 앞에 벌써 와서 졸업식을 치르고 있었다. 나는 또 뒤늦게 도착했고 친구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친구의 긴 머리카락에 손을 대려고 하는 찰나, 그 친구가 갑자기 뒤돌아 섰다. '헉!' 나는 너무 놀라 눈을 번쩍 뜬 채 꿈에서 깼다. 뒤돌아 선 얼굴은 친구의 얼굴이 아니라 '내 얼굴'이었다. 내가 15년 동안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 친구라고 생각하며 원망했던 대상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한가한 어느 낮, 나는 소파에 누워 재방송하던 드라마 <악귀>를 보다가, 내 꿈과 너무 비슷한 장면이 나와 소름이 돋았다. 배우 김태리(구산영 역)가 주인공이었는데, 그녀는 꿈 속에서 귀신에 쫓겨 계속 뛰어가는 중이었다. 숨 가쁘게 뛰다가 막 다른 길에서 귀신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공포에 질린 채 귀신의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겨보니 귀신의 얼굴은 다름 아닌 김태리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자신이 그렇게 무서워하던 귀신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는다. 자신을 강하게 억누르던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은 도덕적인 마음이었다. 그녀는 생활력이 없었던 어머니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나는 단짝이었던 그 친구와 시간이 갈수록 잘 지내지 못했다. 졸업 후에는 아예 연락이 끊겼다. 나는 내가 원만하게 대인관계를 맺는 사람인 줄 았았다. 하지만 나는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사소한 농담을 던졌는데, 그 친구가 정색을 하던 날, 나는 알아서 사라져 주었다. 친구의 표정을 통해 내가 얼마나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지 깨달았다. 내 친구관계의 첫 실패였다.


그 뒤로 사회생활, 대인관계, 직장생활 등 사실 내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만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나한테 화나고 원망스러운 감정을 짐짓 아닌 것처럼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틀린 것 이라며 남탓을 했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죄를 지었다. 양심을 버린 죄.


Norte père qui êtes aux cieux(노트뻬흐 뀌떼죠 씨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Que vorte nom soit sanctifié(끄 보트 놈 수아 썽크티피)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빛나시며

Que vorte règne arrive(끄 보트 헤뇨 아히브)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며

Que vorte volonté soit faite(끄 보트 볼롱티 수아 페트)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Sincut in coelo, et in terra(*원작에서 프랑스어를 안 쓰고 라틴어를 썼음)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출처: https://bibliothequenumerique.tv5monde.com/livre/64/L-Homme-qui-rit.102p>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는 장면이다. 폭풍우를 견디다 못한 배의 바닥에 구멍이 생기고 말았는데, 물이 계속 차오르고 가라앉기 직전이다. 사람들은 배의 무게를 줄이려고 각자의 짐을 바다로 던져 버린다. 마지막 짐까지 다 버리고 더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 현자가 나와 일침 한다.


"우리의 죄도 바다에 던지시오."


이 배를 가라앉게 만들었던 가장 무게가 나가는 짐은 바로 그들의 죄였다. 그들은 조금 전, 어린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고 배를 출항시켰다. 버려졌던 이 아이가 나중에 '웃는 남자'라는 주인공이 된다. 아이를 버렸던 양심 없는 행동, 그 죄의 무게를 덜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신에게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물은 계속 차올라 그들의 무릎, 어깨, 머리까지 닿는다. 현자는 마지막 기도인 주기도문을 하늘에 올리고 결국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


내가 나의 최후의 보루였던 가족관계를 실패하던 날, 나는 침몰했다. 가족들은 나에게 선포했다. 자신들은 가족이라고 말하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라고.


'그래, 나도 한 명의 사람이지.'


나는 깊숙이 가라앉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대체 내가 가라앉은 여기가 어디쯤일까. 눈을 똑바로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나의 가족,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들, 장을 볼 때 만나는 상인들, 버스 안의 사람들 등 내 근처의 사람들을 시작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한 사람 또 한 사람 피하지 않고 오랜 시간 쳐다 보았다. 내 인생 하나가 끝났다.


몇 년 후, 나는 내 목을 잘라 머리를 판자에 걸어두는 꿈을 꿨다. 나는 내 머리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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