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의 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누군가가 세차게 초인종 끈을 잡아당긴다. 문이 열리자 피곤에 지친 한 사람이 편지를 꺼낸다.
"이 편지를 전하는 사람은 바베트 에르상 부인입니다....(중략) 내란이 이곳 거리를 휩쓸고 있다오. 프랑스 민족끼리 서로 피를 흘리고 있소. 인권을 위해 일어선 코뮌 지지자들은 싸움에서 지고 목숨을 잃었소. 에르상 부인의 남편과 아들은 유명한 미용사였는데, 총에 맞아 죽고 말았소. 부인은 페트롤뢰즈(석유로 가옥에 불을 지른 여자를 뜻하오)라 하여 붙잡혔다가, 피에 굶주린 갈리페 장군의 손아귀에서 가까스로 탈출했소. 부인은 가진 것을 모두 잃었고 더는 프랑스에 있을 수 없는 처지라오....(중략) 바베트는 요리를 할 줄 아오."
<출처: 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다네센 소설.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추미옥 옮김. 문학동네 펴낸 곳. 25p)
이곳 노르웨이 시골 마을에 도착한 사람은 프랑스에서 온 여인 바베트였다. 그녀는 파리 코뮌(Paris Commune)의 지지자였다. 파리 시내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페트홀뢰즈(petroleuse)'로 활동하며 건물에 불을 지른 혁명가였다. 그 당시 실제로 튈르리 궁, 루브르, 팔레 루아얄과 각종 정부, 법원 청사 건물 등 역사적인 건물들이 고의로 불태워졌다고 한다. 프랑스어 petrole(페트홀)은 석유라는 뜻이고, petroleuse(페트홀뢰즈)는 석유로 불을 지른 여자라는 뜻이다.
파리 코뮌은 파리 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를 말한다. 정부의 존속 기간(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은 2개월 정도로 짧았지만, 노동자 계급이 세운 세계 최초의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자치 정부라는 평가를 받았고, 나중에 사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파리 코뮌은 실패했다. 그녀는 가족과 요리사라는 직업을 모두 잃고 도망쳐왔다. 바베트를 받아 준 이들은 금욕주의를 실천하고 있던 자매였다. 그녀는 여기서 가정부로 일하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날 그녀는 파리로부터 1만 프랑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바베트는 원래 파리의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당대 최고의 요리사였다. 수준급 요리 실력을 갖춘 그녀, 고급 재료를 살 수 있는 충분한 돈, 그리고 그 요리를 맛 볼 관객,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이제 자신의 진면목을 펼칠 기회가 온 것이다. 바로 '바베트의 만찬'이다.
'최고급 음식을 통해 떠올린 무언가'
고가의 재료로 요리한 최고급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 사람들은 음식을 먹다가, 먹는다는 생각을 잊어버린다. 각자 저마다의 감상에 젖어든다. 불화, 갈등, 양심의 가책, 상처, 원한 등에 눌려 있었다. 혀가 풀리자 마음이 풀리고, 지난날의 불편한 감정들로부터 너그러워진다. 그들은 하늘에서 은총이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목사의 오랜 신도들은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훗날 이날 저녁을 떠올릴 때, 그들이 그토록 고귀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 자신들이 지닌 가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출처: 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다네센 소설.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추미옥 옮김. 문학동네 펴낸 곳. 67p>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맛있다'라고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는 못했다. 음식을 통해서 무언가를 떠올렸지만 음식과는 별개로 생각한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그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바베트에게 돈을 다 써서 어떡하냐며 걱정을 한다. 하지만 바베트는 만찬의 분위기를 통해 무엇인가 자신이 실현했다는 것을 느끼는데, 그것은 맛있는 음식,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내가 음악을 들을 때, '음악 괜찮네'라며 듣고, 그림을 볼 때, '잘 그렸다'라며 보고, 소설을 읽고 나서, '재밌네'라고 말하면, 보통 느낌이 괜찮은 것을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이건 뭐지'라고 생각하며 한 없이 돌려서 듣고, 동영상을 찾아보았던 음악이 있었다. 요즘에도 라디오를 듣는다. 앱이나 동영상을 통해 재방송을 보는 것이긴 하지만.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칠러 센트페테리(Csilla Szentpeteri)가 연주한 <보로스티안(borostyan)>이라는 음악이었다. 챠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 E단조 작품번호 64 가운데,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를 편곡하여 연주한 것인데, 나에게는 원곡보다 더 듣기가 좋았다.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뉴에이지 감성이 느껴진다.
<참고: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입니다. 2025.01.19 방송 중 '보로스티안'>
아, 하늘이 내려주신 피아니스트 천재! 책 <바베트의 만찬>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나도 똑같다. 잘 모르면 하늘에서 의미를 찾는다. 만일 이 음악을 통해 내가 느낀 감동을 그 피아니스트가 본 다면, 바베트처럼 본인이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까? 반대로 나는 예술을 통해 누군가에게 이런 느낌을 줄 수 있을까?
괜찮은 것 이상의 괜찮은 것, 맛있는 것 이상의 맛있는 것, 잘 그린 것 이상의 잘 그린 것, 그런 것들을 느낄 때,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완성도가 이미 최고의 수준임에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인데, 그럼에도 뭔지는 모르고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한 생각이 들 때, 말하자면 아름다운 것 이상의 아름다운 것을 느낄 때, 어떤 단어로 말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황홀하다', '경이롭다', '스펙터클하다' 등의 단어가 아닌 더욱더 적절한 단어로 말하고 싶지만 , 나는 찾을 수가 없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을 '미학'이라고 한다. 완성도가 높은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한다고 했다. 아직 미학을 잘 모르지만, 거기에 내가 찾고 싶은 단어가 있을 것 같다. 철학자들은 새로운 단어를 잘 만들어 내니까.
바베트의 요리는 무엇 때문에 최고의 요리에서 예술로 승화되었을까. 그녀는 프랑스에서 바리케이드에 붉은 깃발을 꽂고 당당히 나아갔던 '페트홀뢰즈' 즉, 불의 혁명가였다. 그녀의 성품은 요리에 녹아들어, 영혼이 허기져 있던 사람들에게 불을 지펴 준다. 요리가 추구한 것은 따뜻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바베트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가 된다. 비로소 바베트는 하고 싶었던 말을 외친다.
"저는 위대한 예술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