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도 살아보자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지옥편)을 주제로 한 로뎅의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에는 인간의 군상이 모여있다. 작품의 문 윗 쪽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작게 위치하고 있다. 이 '생각하는 사람'만 따로 가져다가 독립적으로 크게 만들었는데, 그 조각상이 흔히 잘 알고 있는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이다. 조각상에서 인간은 턱을 괴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생각하고 있다.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이 바로 지옥이었다. 지옥은 항상 아래쪽에 있다.
프랑스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5세기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한 빅토르 위고의 고전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초연 직후 프랑스의 국민 뮤지컬이 되었으며, 특히 넘버 '벨'의 열풍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 곡은 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 역의 세 남자 Garu, Daniel Lavoie, Patrick Fiori가 함께 불렀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가 춤추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억눌려있던 사랑의 본능이 깨어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그에게 마치 지옥문이 열리는 것과 같다. 그의 모습은 아름다운 에스메랄다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 흉측한 꼽추였기 때문이다. 콰지모도역의 가루(Garou)는 굵고 거친 목소리로 캐릭터를 잘 표현하며 노래한다.
Belle(벨)
- 아름다워
C'est un mot qu'on dirait invente pour elle(쎄따모꿘 디헤 땅버티푸헬)
- 그 말은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 일거야
Quand elle danse et qu'elle met son corps a jour, tel(꿘델덩씨 꿸메손꼬 아주뗄)
- 그녀가 춤을 추면서 몸을 움직일 때면
Un oiseau qui etend ses ailes pour s'envoler(아누아주끼 떵세젤 뿌 써벌리)
-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 같아
Alors je sens l'enfer s'ouvrir sous mes pieds(알로 즈썽렁페 수브히으 수메삐에)
- 그럼 난 내 발 밑에 지옥문이 열리는 것을 느끼지
...
O Lucifer! oh! Laisse-moi rien qu'une fois(오루시페 오레쎄무아 히엥 뀌느푸아)
- 오 루시퍼! 한 번만이라도
Glisser mes doigts dans les cheveux d'Esmeralda(글리쎄메두아 덩리슈브 데스메랄다)
- 내가 에스메랄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수 있게 해 주겠니
<참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중 Belle(벨)>
콰지모도의 발 밑에서 열린 이 문은 천국의 문이 아니고 '지옥의 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사랑은 힘들게 펼쳐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결국, 마지막에 그는 죽은 에스메랄다를 부여잡고 울부짖는다.
나는 가족 사이에서는 '위세 부리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잘한 일을 겸손하게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식점에서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음식의 위생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헬스장에서는 '갱년기 증세가 있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화내고 울면서 클레임을 걸었기 때문이다. 원래 내 성격은 소심하고 조용하다. 이렇게 바뀌게 된 것은 '나의 지옥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분식집 물병 사건'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나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웬 여자가 들어오더니 내 테이블 위의 페트병 물병을 찌그러뜨리며 말도 없이 낚아채갔다. 나는 처음에 이 무례한 상황을 인식 못하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이제 난 참지 않기로 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이러한 상황을 참지 않기로 했었지.'
그런데 문제는 행동할 생각은 있는데, 몸이 의자에서 일어나지를 않았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다가, 그 여자가 가게를 나가기 전에 일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압박감이 밀려왔다. 힘을 더 주다가 물 컵이 엎어지고, 내 의자가 뒤로 넘어가 버렸다. 지진이 난 것처럼. 내 발 밑에는 지옥문이 열리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테이블에 가서 페트병을 찌그러뜨리며 뺐어왔다. 똑같이 무례하게. 떨리는 손으로 물을 한 잔 따라 마셨다. 그리고 가게를 떠났다. '거사'를 치렀다.
새로운 삶을 살아 보고 싶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내 소심한 성격을 고치기로 마음먹었고, 내 물병 하나 다시 찾아오는 데 10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결과적으로 지옥의 문을 열은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옥이라서 그럴까. 굴곡이 있는 길을 가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나를 무례하다고 한다. 어쩌면 원래 내가 무례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의 없는 내가 자연스럽다. 그날의 지옥문은 내 발 밑에서만 열렸다. 옆에 지인이 함께 있었음에도. 오직 나만의 맞춤 지옥이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지옥일 수가 없었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Bienvenue en enfer'(비앙브누 어넝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