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중산층
내가 어렸을 때, 프랑스 영화배우 소피 마르소는 국내에서 '책받침 여신'으로 유명했고 지금도 인지도가 높다. 오랫동안 배우생활을 해왔고 연기력도 훌륭한데, 이상하게도 영화제와는 인연이 많지 않았다. 2021년에 이르러서야 영화 <다 잘된 거야>를 통해 처음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피 마르소가 이렇게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이유가 '노동자계층이라서'라는 말이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트럭운전사였고, 어머니는 가게 종업원이었다.
'혁명의 나라에서 노동자를 차별하다니'
프랑스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프랑스혁명'이라는 시민혁명이 아니었던가. 어떤 나라보다도 자유가 넘치는 곳 말이다. 영화계를 보더라도 국내에서 논란이 많고 이해하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인정해 주는 '진보적인 나라' 말이다. '프랑스 영화계에서 노동자 출신을 차별한다'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 의아했다.
국내에서는 노동자계층이 정치권력을 잡았을 때 이슈가 된다. '소년공이 대통령이 되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놀랄만한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프랑스의 영화계는 우리나라의 정치계만큼이나 권력이 있고 보수적인 곳인가. 알고 보니 영화를 최초로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인이었고, 칸 영화제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였다. 영화감독들의 난해한 작품세계를 의미 있게 보는 누벨바그 운동도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프랑스는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큰 나라가 맞았다.
프랑스는 루이 16세 시기에 3가지 신분이 있었는데, 제1신분은 성직자, 제2신분은 귀족, 제3신분은 시민이다. 그 유명한 프랑스혁명은 제3신분에서 일어난다. 제3신분 중에서 부유하고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부르주아였다. 부르주아는 투표권을 부유층에게만 주어야 한다고 했고,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선호하는 등, 시민에 속했지만 시민이 아닌 것 같은 보수적인 성격이었다. 농민으로 구성된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것과는 대비되었다. 프랑스어 bourgeois(부흐주아)는 '성 안의 사람들'이라는 뜻이고, 현대사회에서는 중산층, 자본가를 뜻한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근대사회가 되면서, 정치권력은 왕족과 귀족에서 시민에게 옮겨갔다. 과거에 상인이나 수공업자였던 사람들이 자본가계층이 되어 최정상에서 올랐고, 나머지 민중은 노동자계층이 되었다. 신분제는 사라졌으나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계층이 만들어져 갈등과 차별이 시작된다. 진보적인 지식인인 부르주아는 왕에게는 진보적이었지만 노동자에게는 진보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가 노동자계층을 진보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프랑스에서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 중에는 '사회문제에 참여한다'는 말이 있었다. 중산층은 경제적으로 봤을 때는 수입 수준이 상위 20%와 하위 30%를 뺀 중간 계층을 말하고,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라고 한다.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다.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다.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줄 안다.
-'사회적 공분'에 의연히 참여한다.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한다.
<출처: 착 붙는 프랑스어 독학 첫걸음. 저자 임한나. 펴낸 곳 랭귀지플러스. 61p>
소피 마르소는 노동자에서 부르주아로 계층이동을 했지만 사회문제에 대해서 소신을 밝힌다. 그녀는 극우정당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운동을 했었고, 프랑스의 국민배우였던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성범죄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2022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 글쓰기'로 독보적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식료품과 봉제품을 팔고 식당을 했던 노동자계층이었는데, 사립 신학교에 가면서 부르주아를 경험한다. 그러자 친숙했던 노동자의 세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출처: 부끄러움. La honte. 저자 아니 에르노. 옮긴이 이재룡. 발행처 김영사. 117p>
'부끄러움을 폭로해 독보적 세계를 구축하다'
그녀는 부끄러운 것들을 봉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부끄러운 뿌리를 폭로해 버렸다. 노동자계층만이 사용하는 관습과 사투리, 행동양식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글로 썼다. 사람들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지금까지 부끄럽게 생각했던 것이 정말 부끄러운 것인지 생각을 한다.
아니 에르노가 노동자와 부르주아의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할 때 내려온 '구명줄',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그녀는 용기내어 그 구명줄을 잡고, 노동자계층을 부르주아가 계몽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로 끌어 올린다. 사실 부끄러운 것들이란 부르주아의 시선에서 본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