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삶을 찍는 것인가

순간에 몰입하라

by 겨울햇살

농구경기 중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소속의 농구선수)의 득점골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특별한 이 순간, 아무도 경기를 보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팔을 한껏 뻗어 휴대폰을 높이 든다. '찰칵찰칵' 오로지 촬영에만 더욱 집중할 뿐이다. 휴대폰 화면을 통해 경기를 본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프랑스 철학교수 라파엘 앙토방(Raphael Enthoven)은 "왜 사람들은 삶을 경험하지 않고 찍는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라파엘 앙토방은 프랑스에서 각종 매체나 강연을 통해 철학적인 관점을 시사하고 있는 철학자이다. 카를라 브루니(프랑스 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의 부인)와 염문을 뿌렸던 괴짜이기도 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놀라운 점을 말하고 있었다.


"c'est qu'on voit des milliers de gens

-사진 속에 많은 사람들이

qui, au lieu de regrder le spectacle, le filment."

-경기를 보는 대신 찍고 있다는 것이죠.

"Pourquoi le filment-ils?"

-이들은 왜 촬영하는 걸까요?

"C'est un moment extraordinaire.

-매우 특별한 순간이긴 하죠.

"il va devenir le plus grand marquer de la NBA."

-그(르브론 제임스)가 NBA 최다 득점골을 기록하는 순간이니까요.

"C'est un moment historique qu'on se prive de vivre,

-매우 역사적인 순간이 맞아요.

tout au desir que nous sommes de l'avoir vecu."

-그토록 경험하길 원했던 것을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는 순간이니까요.

<출처: https://www.youtube.com/@SalondeMoola/우리는 왜 삶을 살아가지 않고... Raphael Enthoven 편>


정말 보고 싶었던 경기 장면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스스로가 포기하고 있다면서, 그는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경기장에서 뿐만 아니라 여행을 가도, 콘서트장을 가도 현재 일어나는 상황을 직접 보지 않고 휴대폰에 위임한다. 촬영과 동시에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경험은 할 수 없다. 극적인 장면일수록 촬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이 순간 몰입할 수가 없다.


과연 삶을 휴대폰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내가 삶을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휴대폰에 저장한 사진, 동영상들은 내가 살아 온 삶의 증명자료로 제출되고 있는데 말이다.


문제는 '프레임'에 갇힌다는 것이다. 프레임이란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해석한 세상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간다. 휴대폰 프레임 이전에 내 눈이라는 프레임이 있었다. 무엇인가를 촬영하게 되면, 휴대폰 화면이라는 그 크기만큼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시야가 축소되면서, 내 생각의 관점은 점점 좁아진다.


그러면 이 넓은 세상의 일부분 만을 보게 된다. 더불어 렌즈를 통해서 왜곡해서도 보인다. 또 자신이 편집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휴대폰 틀 안에 규정된 세상 속에서 익숙해져 살고 있다. 예전에 TV를 주로 보았던 시절에는 TV를 '바보상자'라고 한 것과 같다.


플라스틱 튤립,

플라스틱 와인잔,

먹을 수 없는 잘 구워진 플라스틱 바게트,

이것들을 올려 놓을 가느다란 다리의 테이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그곳에는 오래된 '왕의 연못'이 있다. 사람들은, 특히 젊은 연인들은 연못 근처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테이블을 차려놓고 사진을 찍으며 소풍을 즐겼다. 이상하게도 테이블 위에 있는 바게트 빵은 모형이고 튤립 꽃은 가짜였다. 진짜는 커피 정도였다. 아마도 사진 촬영이 목적이니 가짜여도 상관없었던 모양이다. 사진으로는 가짜가 잘 티 나지 않으니까 sns에 그럴듯하게 자랑할 수 있다. 오히려 더 예쁜 색감의 사진이 나왔다. 옆의 커플도, 또 그 옆의 커플도 복사한 사람들처럼 같은 사진을 만들어 냈다.


한자성어 중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에서는 없는 용을 그림 속에 그렸는데, 가장 중요한 용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상태였다. 용의 눈을 그리면 용이 살아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이 용의 눈을 한 점 찍기 위해, 사람들은 휴대폰을 치켜들고 진짜인 자신을 가짜 플라스틱 사이에 끼워 놓으며, 진정한 주인공의 모습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내가 여기 있었노라'


연인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사각 프레임을 벗어나 시야를 조금 확장해 본다. 뒤에서 이들을 구경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이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각자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는 관객들이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다.


원래 이곳은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언론에 소개가 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사진촬영의 명소가 되었다. 주민들은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을 조금 떨어져 바라본다. 아름다운 연못에서 똑같은 소풍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감상하는 것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특이한 경험이다. 누군가 보다 못해 신고를 했을까. 요즘은 연못 안 쪽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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